목공샘의 잡테리어

지속가능한 지구살이를 위해 재활용/친환경/ DIY 공부 중

독서일기 53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6

이웃의 체온 계수님께 수인들은 늘 벽을 만납니다. 통근길의 시민이 'stop'을 만나듯, 사슴이 엽사를 만나듯, 수인들은 징역의 도처에서 늘 벽을 만나고 있습니다. 가련한 자유의 시간인 꿈속에서마저 벽을 만나고 마는 것입니다. 무수한 벽과 벽 사이, 운신도 어려운 각진 공간에서 우리는 부단히 사고의 벽을 헐고자 합니다. 생각의 지붕을 벗고자 합니다. 온기 한 점 없는 냉방에서 우리를 덮어준 것은 동료들의 체온이었습니다. 추운 사람들끼리 서로의 체온을 모으는 동안 우리는 냉방이 가르치는 '벗'의 의미를, 겨울이 가르치는 '이웃의 체온'을 조금씩 조금씩 이해해가는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부모님께 접견 때마다 애써 아픈 마음을 누르시고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는 아버님, 어머님의 그 각별하신 배려 앞에서 저는..

독서일기/필사 2018.03.26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5

생각을 높이고자 아버님께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하여야 사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여자 동생에게 '미' 자는 '양' '대'의 회의로서 양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큼직한 양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그 고기를 먹고 그 털을 입는 양은 당시의 물질적 생활의 기본이었으며, 양이 커서 생활이 풍족해질 때의 그 푼푼한 마음이 곧 미였고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므로 너는 먼저 그녀의 생활목표의 소재를 확인하고 그 생활의 자세를 관찰하여 나아가 ..

독서일기/필사 2018.03.25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4

객관적 달성보다 주관적 지향을 동생에게 독방은 강한 개인이 창조되는 영토이다. 연말이, 새해가 다가왔다. 유정한 시간의 대하위에 팻말을 박아 연월을 정분하는 것은 아마 그 표적 앞에서 스스로의 옷깃을 여미어 바로 하자는 하나의 작은 '약속'인지도 모른다. 그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신영복선생님의 대전교도소 복역기간 중의 글을 엮은 것이다. 1971년부터 1986년. 내가 3살때부터 고1까지의 기간이다.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무려 16년을 대전교도소에 갇혀 계신 것이다.(물론 전체 수형생활은 20년 20일) 정치, 사회, 역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무럭무럭 자란 그 시간이 웬지 죄스럽다. 무엇을 위해 그..

독서일기/필사 2018.03.2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3

니토 위에 쓰는 글 지금부터 걸어서 건너야 할 형극의 벌판 저쪽에는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등댓불처럼 명멸한다. 그렇다.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 고달픈 다리를 끌고 석산빙하라도 건너서 '눈물겨운 재회'로 향하는 이 출발점에서 강한 첫발을 딛어야 한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커다란 기쁨이 작은 슬픔으로 말미암아 그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일은 아무래도 드물 것이라 생각된다. 슬픔보다는 기쁨이 그..

독서일기/필사 2018.03.2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2

청구회 추억 이 부분은 단행복으로도 출간된 [청구회 추억]-신영복 글/조병은 영역/김세현 그림 -으로 필사를 대신한다. 단행본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란... 대학교 때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없었던 내용임을 신영복 선생님의 '청구회 추억'의 추억이란 단행본 후기글에서 확인한다. 단편영화와도 같은 가슴 저린 동화같은 이야기, 그러나 사형수가 교도소에 엎드려 온 몸으로 써내려간 마음 절절한 이야기. 어두웠던 현대사가 만들어 낸 참으로 역설적인 문학적 성취와 개인의 정신사적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본문 내용은 필사하지 않는다.) '청구회 추억'의 추억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스치는 느낌은 한마디로 '공허'였다. 나의 존재 자체가 공동화되는 상실감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너무 짧게 끝..

독서일기/필사 2018.03.2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1

사랑은 경작되는 것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

독서일기/필사 2018.03.20

[떠남과 만남-구본형] 5장-귀환 그리고 후기

귀환 -다시 일상으로 바다는 내 삶이 추구하는 상징이다. 아이들의 이름 속에 모두 바다를 넣은 것처럼 바다는 나의 미래이다. 그리고 꿈이다. 바다는 늘 낮은 곳을 선택하는 물의 승리이다. 바다는 모든 것을 그 안에 담고도 오직 하나의 색, 푸른빛을 유지하고 있다. 똥과 오줌, 신다 버린 신발, 동물의 시체, 어부인 남편을 잃은 부인의 눈물, 절망한 사람이 먹다 버린 소주병, 부정직한 인간이 밤에 몰래 방류한 폐수, 탐욕스러운 인간이 밤새 퍼먹다 토한 오물을 다 쓸어안고도 푸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바다는 가끔 밑바닥을 뒤집어엎어 스스로를 정화한다. 태풍과 풍랑과 해일과 파도는 바다가 스스로를 정화하는 도구들이다. 바다가 바다일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어찌 배우고..

독서일기/필사 2018.03.19

[떠남과 만남-구본형] 5장-1,2,3,4,5

흑산도 -흑산도에는 아직 홍어가 있고 예리 포구에는 옛날의 정취가 남아 있다 서당의 마루에 앉아 처마를 스치고 떨어지는 햇빛을 쬐고 있자니 조용하여 새소리가 더욱 파랗다. 왼쪽에 있는 작은 사랑채의 방문이 빠끔히 열려 있어 손암이 잠시 집을 비운 듯하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하고, 나 또한 지금에 속해 있는 것 같지 않다. 적막이 뜰 가운데 가득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흙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살면서 흙이 좋아져야 비로소 죽을 수 있다. 흙 속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섭지 않아야 죽음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바람이 새소리를 싣고 오는지 새가 바람을 물고 오는지 알 수 없다. 인생은 길이다.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이다. 마음이 모질고 팍팍하여 한 그루의 나무도 자라지 못..

독서일기/필사 2018.03.18

[떠남과 만남-구본형] 4장-3,4,5,6,7,8

보길도 예송리 -바다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제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맑은 날이다. 물리 빠져가는 통리 해수욕장이 길게 바닥을 보이며 눕기 시작한다. 바위 절벽을 따라가는 길에 갑자기 바위가 갈라진 크랙이 나타났다. 너무 커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 자세히 보니 바위가 끝나는 곳에 잡목이 우거져 있고 그 사이로 조그만 소로가 보인다. 이미 다녀간 누군가도 잠시 망설이다 차마 되돌아갈 수 없어 나뭇가지를 잡고 길을 만들며 지나간 모양이다. 최초의 사람이 지나간 뒤에 누군가가 또 그 길을 따라갔고 또 누군가가 한참 뒤에 다녀갔을 것이다. 길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살며 만나는 어려움도 늘 그것이 최초는 아니다. 이미 누군가가 건너간 길이다. 지금 나뭇가지를 붙잡..

독서일기/필사 2018.03.17

[떠남과 만남-구본형] 4장-1,2

땅끝 사자봉에서 보길도 격자봉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다는데 나도 바닷길 따라 그 섬에 가고 싶다 상징을 빼면 인간의 정신은 빈약해진다. 땅끝의 아름다움은 여기가 반도의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비장하고 단호한 정취를 갖게 만든다. 갈두항에서는 미처 이어지지 못한 바다 너머 다른 곳에 있는 세계로 건너가는 부두가 있다. 배는 길을 싣고 먼 바다를 건너 다음 기항지에 그 길들을 풀어놓는다. 마침내 길들은 서로 이어진다. 갈두산 사자봉은 겨우 해발 156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정도의 높이면 바닷바람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넓은 해원을 몰아쳐온 가속도로 온몸을 던져 산에 부딪친다. 이날도 예외가 없다. 사자봉은 거칠 것 없는 푸른 바람으로 가득했다.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돌아보다 서쪽에 ..

독서일기/필사 2018.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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