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지속가능한 지구살이를 위해 재활용/친환경/ DIY 공부 중

독서일기/필사

[떠남과 만남-구본형] 5장-1,2,3,4,5

잡테리어 목공샘 2018. 3. 1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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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흑산도에는 아직 홍어가 있고
예리 포구에는 옛날의 정취가 남아 있다

서당의 마루에 앉아 처마를 스치고 떨어지는 햇빛을 쬐고 있자니 조용하여 새소리가 더욱 파랗다. 왼쪽에 있는 작은 사랑채의 방문이 빠끔히 열려 있어 손암이 잠시 집을 비운 듯하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하고, 나 또한 지금에 속해 있는 것 같지 않다. 적막이 뜰 가운데 가득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흙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살면서 흙이 좋아져야 비로소 죽을 수 있다. 흙 속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섭지 않아야 죽음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바람이 새소리를 싣고 오는지 새가 바람을 물고 오는지 알 수 없다.

인생은 길이다.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이다. 마음이 모질고 팍팍하여 한 그루의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천촌리의 길처럼 솔잎이 깔려 있고 동백나무 우거진 아름다운 길일 수도 있다.

천촌리 산길을 오르며 면암을 생각한다. 그도 아침 일찍 산책을 나와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은 그를 닮아 있을 것이다. 가슴에 핀 꽃이 너무 붉어 남의 나라 대마도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다. 가슴속에 굵은 소나무 기둥이 있어 나라가 무너진 그때 의병을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부드러운 흙일 수 있었기에 일상에 매인 사람들을 설득하여 일어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보잘것없는 그들의 길에 역시 붉은꽃 하나씩 피울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서릿발 같은 그의 속으로 들어갈수록 길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나는 좋은 길이 되고 싶다. 사람들로 하여금 천천히 걷게 하는 길이 되고 싶다. 평평하고 예쁜 바위가 몇 개 있어 좋은 날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쉬어 갈 수 있는 그런 길이고 싶다. 깊은 정취가 있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아' 하며 감탄하는 그런 길이고 싶다. 아, 언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무엇이 되고 싶어하는 나를 좋아한다. 내가 아직 젊은 탓일까.

홍도
-아름답고 슬픈 구녕섬

'사랑'이나 '성'은 둘 다 보통명사이다. 동시에 두 단어들은 매우 구체적인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그 또는 그녀의 몸짓, 물결치는 웃음, 어떤 표정,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보통명사지만 개인에게는 구체적인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사랑과 성이 보통명사일 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할 수 있다. 홍도의 배 위에서처럼. 한낮에 빨치산과 토벌대가 대치하고 있는 지리산 중턱에서처럼. 그러나 그것이 고유명사가 되면, 가슴속으로 들어와 은밀한 비밀로 평생 간직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영혼이 육체 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만이 단독으로 존재한다는 것, 즉 육체로부터 해방된 영혼은 곧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이 육체 안에 머물기 때문에 사람은 욕망과 정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학을 타고 구름 위를 날고 싶다가도 선상에서 먹을 수 있는 소주 한 병과 싱싱한 생선회 한 접시에 쏠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훌륭한 사상과 고고한 삶을 바라지만 아름다운 미인에게서 눈을 떼기도 어렵다. 사바세계는 그런 것이다. 중국인들은 '사바'라는 단어에 여자를 빠뜨리지 않고 겹겹이 넣어놓았다. 그러니 어떻게 '구녕'의 주술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괸매도
-잘록한 허리에 천리향 향기로운 섬

자식들에 관한 한 객관적인 부모는 없다. 늘 지나치게 마련이다. 반성하지만 언제나 그렇다. 그러나 자식들은 다르다. 그들은 생물학적인 관성을 따른다. 아이들이 제법 크면 부모는 울타리 같은 것이 된다. 없으면 큰일이지만 다행히 늘 옆에 있어준다고 믿는 것이 부모이다.

돈은 얼마만큼 가져야 넉넉할까? 사고 싶은 것을 하나도 살 수 없으면 가난한 것이다. 원하는 것이 두 개인데 그중에 하나밖에 살 수 없는 경우는 그럭저럭 사는 것이다. 하나를 사면 다른 것을 살 수 없는 선택적 소비는 중산층의 전형적 모습이다. 청바지도 사고 싶고 빨간 치마도 사고 싶은데, 그 둘을 한꺼번에 살 수 있으면 잘사는 것이다. 돈이 그보다 더 많으면 불행해진다. 가지고 있는 많은 돈으로 더 많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머리는 깨지고 마음은 평화를 찾지 못한다. 그들은 돈으로 무엇이든 사려고 한다. 사랑, 우정, 충성, 하다못해 타인의 복종마저도 사려고 한다. 그는 많은 돈을 세다 간다. 평생 돈을 세다 가지만 그저 셀 뿐이다. 한 푼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부자보다는 그 아들딸들이 훨씬 더 행복하다. 부자의 아들이나 딸이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부자는 되지 말 일이다. 부자는 죽어 혼이 아직 육체를 떠나기도 전에 즐거움에 지친 자식들끼리 돈을 서로 더 가지려고 쌈박질을 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진도 용장산성과 제주 항파두리
-항전 9개월, 또 2년 그리고 700년 뒤

비극은 늘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미국 흑인의 비극은 그들을 해방시킨 링컨이 흑인이 아니라는 것에서 연유된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의 비극은 우리의 힘으로 해방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미군정이 시작되었고 국토은 나뉘었다. 일제의 경찰이 미군정 경찰로 옷을 바꾸어 입고, 친일파는 반공주의자가 되어 득세했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 역시 비극적이다. 그는 종속적이며 누군가가 시킨 일만 할 뿐이다. 하수인이 된다는 것은 몸은 몸대로 고되고 남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중오하게 되고 이를 견디기 위해 세속화된다. 그의 내면 어디에도 스스로를 위한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에 기대고 권력에 탐닉한다. 친몽고파든 친일파든 친미파든 외부에서 힘을 빌려오는 경우에는 늘 외부에 종속된다. 그런 경우는 자기일 수 없다. 외부의 힘에 따르고 적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적응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라는 것이다.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을 창조함으로써 스스로 그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자기로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이 허락한대로.
-마을협동조합의 실패를 위안받다.



항파두리성 입구.
이곳에서 고려 최정예부대 삼별초는 항몽 자주 운동을 벌였다. 그 중심에 있던 김통정의 이야기가 이곳 구석구석에 전해져 온다.[사진:윤광준]

한라산
-구름 속 눈 위의 산책

나이가 들수록 붉은 소나무가 좋아진다. 나이가 많은 소나무에서는 향기가 난다. 나도 나이가 들어 저렇게 고울 수 있기를 바란다. 적송들 밑에는 조릿대가 가득하다. 영혼이 맑은 어린아이들처럼 경쾌하고 수다스럽다. 조릿대와 바람은 친하다. 속삭이는 듯 다정하다가 싸우듯 와삭대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바람이 삐쳐 가버리면 조릿대도 실망해서 조용해진다. 바람이 웃는 얼굴로 다시 찾아오면 조릿대도 다시 유쾌해진다. 붉은 소나무는 점잖게 관망하며 소리나지 않게 웃고 있다. 아이들을 보는 어른처럼 그렇게 의젓하게 서 있다. 산속에서의 일상도 우리의 일상과 같다.

산행의 즐거움은 산과 만나는 데 있다. 산은 음악과 같다. 조용해야 들을 수 있다. 한적해야 피어 있는 들꽃을 볼 수 있다. 호젓하지 않으면 온몸의 피부가 그 정적을 감지할 수 없다.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바위에서 옷을 느슨하게 풀어놓고 땀을 식힐 수 있어야 청량한 계곡에서 생겨나 아름드리 나무와 고운 꽃잎을 만지며 푸른 하늘을 지나온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이름 모를 새, 그러나 그 울음은 익히 알고 있는 새소리가 반갑고, 얼마 남지 않은 산벛꽃잎 중 하나가 나비처럼 오래 공중에 머물다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봄이 깊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의 한 하이쿠 시인은 "마음을 쉬고 보면 새들이 날아간 자국까지 보인다"라고 읊는다. 오랜 후에 산의 얼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핀 들꽃으로 다시 태어나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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