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지속가능한 지구살이를 위해 재활용/친환경/ DIY 공부 중

독서일기/필사

[떠남과 만남-구본형] 4장-3,4,5,6,7,8

잡테리어 목공샘 2018. 3. 17.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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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예송리
-바다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제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맑은 날이다. 물리 빠져가는 통리 해수욕장이 길게 바닥을 보이며 눕기 시작한다.

바위 절벽을 따라가는 길에 갑자기 바위가 갈라진 크랙이 나타났다. 너무 커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 자세히 보니 바위가 끝나는 곳에 잡목이 우거져 있고 그 사이로 조그만 소로가 보인다. 이미 다녀간 누군가도 잠시 망설이다 차마 되돌아갈 수 없어 나뭇가지를 잡고 길을 만들며 지나간 모양이다. 최초의 사람이 지나간 뒤에 누군가가 또 그 길을 따라갔고 또 누군가가 한참 뒤에 다녀갔을 것이다. 길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살며 만나는 어려움도 늘 그것이 최초는 아니다. 이미 누군가가 건너간 길이다. 지금 나뭇가지를 붙잡고 천애의 절벽을 발밑에 두고 아슬아슬 건너가지만 내가 지나온 자리는 결국 나중에 길이 될 것이다.

오늘 산을 타고 넘으려던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아쉬움은 없다. 나는 오늘 하루를 아주 잘 보냈다. 내가 오늘 계획한 것은 산을 넘는 데 있다기보다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행복했고 더 바랄 것이 없다.

지나가는 버스 안은 학교를 마친 중고생들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탄 버스는 늘 경쾌하다. 계집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모습, 사내아이들이 짓궂게 장난치는 모습이 스치는 차창을 통해서도 금방 감지된다. 아이들은 인생을 어떻게 사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린다. 아이들처럼 사는 어른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조금 더 불행하다.

완도 선착장
-부두에 매여 있는 배들을 보면 자유로움을 느낀다

부두에 매여 있는 배들을 보면 자유로움을 느낀다. 타고 어디론가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육지가 끝나는 그곳에서 섬으로 향ㅇ해 갈 수 있을 것 같다. 한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한다. 그 섬도 배를 타고 떠나면 도착하게 되리라.

장좌리 장도
-바람과 파도 속에서 그때를 아쉬워한다

사당을 나와 평평한 장도의 정상에 서서 고금도와 장도 사이의 해협을 빠져 나가는 파도를 보고 있었다. 파도는 언제나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출렁거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바다는 함성을 지르며 폭우 뒤의 성난 강물처럼 넘실대며 더 넓은 곳으로 몰려 나갔다. 그날 신라의 선단은 그렇게 강력했고, 그 힘으로 국제적 해상 질서를 장악했을 것이다. 이렇게 거칠고 험상궂은 날에 장도를 찾아오면 더 좋다. 바다를 누비던 사람들의 기개와 고함이 느껴진다. 크지 않은 배로 바람을 타고 파도를 넘던 굵은 팔뚝과 수염과 활기찬 몸놀림과 호쾌한 웃음이 저 바람 속에 들어 있다.

완도에서 녹동까지
-아름다운 한려수도 푸른 뱃길을 따라

심심하다는 것은 자기 속에 데리고 놀 자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늘 밖에서 친구가 될 만한 것을 찾는다.

내내 남도 바다를 따라다녔지만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가슴 가득 바닷빛이 푸르게 들면 푸른 얼굴로 서울에 돌아가리라. 바다의 자태는 날씨에 따라 다르고 하루의 시점에 따라서도 다르다. 주위의 모습에 따라 또 다른 것이 바다이다. 모든 것을 담고도 푸른빛 하나로 자신을 정돈하는 바다지만 조금씩 다른 물빛, 다른 질감으로 다가온다.

변화를 공부하고 싶으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햇빛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같은 2시의 햇빛도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물빛 역시 봄엔 초록색이고, 여름엔 파르스름한 녹색이다. 가을엔 푸르며, 겨울엔 검푸르다. 나무에 잎이 나고 지는 것을 보거나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며 변화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이 왜 피어나고 또 왜 갑자기 그 활력을 잃게 되는지를 알고 싶으면 산에 가보라. 봄이 되면 산 전체가 피어난다. 그리고 겨울이면 산 전체가 웅크리고 있다. 왜 그런가?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인문학적 호기심이다. 변화의 능력과 경영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문학이 죽으면 경영학이 살아 있을 수 없다. 돈은 사람이 건강할 때 필요한 것이다.

-변화를 공부하고 싶으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해는 떠서 질 때까지 한번도 같은 적이 없다. [사진:윤광준]

하동 쌍계사
-벛꽃은 이미 지고

자연 속에는 산과 늑대만이 알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리고 늑대가 죽음으로써 그것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죽으면 우리의 사랑도 사라진다. 그러나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 우리가 살다가 이곳을 떠나더라도 아직 남아 있는 이들에기는 아름다운 자연을 남겨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놀이가 밤이 깊어질수록 야단스러워지는 이유는 어쩌다 한 번 쉬기 때문이다. 휴식의 절대 길이가 짧다 보니, 당연히 볼 것도 해야 할 일도 많다. 그러니 밤늦도록 놀아야 하고 마셔야 한다. 혹은 새벽까지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다시 일로 복귀해야 할 날까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휴식이 휴식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문화는 우리의 휴식 시간이 짧다는 것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짧게 끊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텔레비전 시청, 노래방, 그리고 짧은 여행은 향락적인 소비문화일 수밖에 없다. 자유시간이 턱없이 짧기 때문에 클라이맥스는 빨리 맛보아야 한다. 뜸을 들일 시간이 없다. 짧은 시간에 농축되어야 하기 때문에 진해야 되고, 따라서 야만적이며 과격한 몸짓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처럼의 휴식은 또 다른 노동이 되고 만다.

바쁘다는 것, 그리하여 빨라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 이것은 우리가 놀고 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는 쉽게 말해 잘 노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가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유시간이 부족하면 자기의 삶을 자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유한계급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문화사회란 그러므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자아의 실현을 위해 투여하는 사회이다.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율적인 활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문화사회인 것이다.

목포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서로 마음에는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젊은 남녀의 긴장도 공기를 타고 전해진다. 비록 일상적 대화를 나누기는 하지만 뜻밖의 제안을 기대하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오후의 감상이 짐짓 무관심한 얼굴 위에 농염하다.
-선상 청춘남녀의  심리를 이토록 짧고 명료하게 묘사하다니.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들어가는 배안에서, 또 어느 핸가 강화 석모도로 향하는 선상에서 가졌던 생각이 들킨 듯하여 얼굴이 화끈거린다.

배에서 내려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바람을 실컷 쐬어서 그런지 배가 약간 아팠다. 목포역 앞 남교시장 주변을 걷다가 목욕탕이 있어 들어갔다. 따뜻한 탕 속에 오래 들어가 있었더니 배가 훨씬 편안해진 것 같다. 작은 아이 하나가 아버지를 따라 들어왔다. 탕 속에 들어와 혼자 노는데 조금도 지루해하지 않는다. 수건의 한쪽 끝을 잡고 커다란 고기처럼 끌고 다니기도 하고 세숫대야를 물위에 띄우고 재빨리 올라타기도 한다.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자신에게, 수건에게 그리고 세숫대야에게 한다. 그 아이는 목욕탕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바다에서 커다란 고래를 타고 자기 집보다 더 큰 흰 갈치를 잡아끌고 있는 중이다. 그의 영혼이 놀고 있는 곳은 마법의 세계이다.

어른이 되면 자신에게 주술을 거는 힘을 잃어버린다. 마법의 힘을 상실했기에 그가 보는 것은 목욕탕이며 수건이며 세숫대야일 뿐이다. 그 속에서 물고기도 커다란 고래도 멋진 하얀색 배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양 어깨에 짐을 가득 진 당나귀' 같은 중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혼했으니 먹고살아야 한다. 일상의 걱정들과 정해진 일정들이 내적인 성찰을 방해한다. 사회화의 과정에서 습득된 지식이 어린 시절의 마법의 힘을 대체하게 된다.

세상의 어느 문화이건 어린아이들의 세계는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현실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내부로 기어들어가 아무런 물리적 제약이 없는 정신의 세계를 넘나든다. 뜨거운 목욕탕 속에 파란 고래 한 마리가 들어와 함께 놀아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얀 수건이 마술 지팡이의 도움으로 금빛 번쩍이는 변환의 과정을 거쳐 희고 커다란 갈치로 변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그 아이의 도움으로 뜨거운 남태평양의 야자수 아래 누워 있다.

시장의 좌판처럼 마음 편한 음식점은 없다. 긴 나무의자는 나와 다른 일행을 구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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