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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의 밤
-여관에서, 그리움으로
함께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면 함께 있고 싶다. 함께 있다 혼자 있게 되면 그립고, 혼자 있다 함께 있게 되면 작은 일로도 서로 다툰다. 그렇게 얼고 녹고 다시 얼고 녹으면서 마침내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또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움이며 질투이며 욕설이며 상처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루함이며 떠남이며 귀환이며 눈물이다. 누구도 사랑이라는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다이내믹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둘러보라. 사랑만큼 환상하게 못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 그릇된 사랑도 있고 인고의 사랑도 있다. 그것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또 있겠는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지닌 인생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 그것은 축복이다.
처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오늘 밤은 그저 그리움 속에 그녀의 목소리를 가만히 놓아두었다.
마량의 아침
-산다는 건 망설임이며 차마 어쩔 수 없음이다.
아침에 일어나 마량의 거리를 걸었다. 거리랄 것도 없다. 해안선을 따라 1킬로미터 정도 되는 길인데, 산 밑으로 가옥들이 들어서 있을 뿐이다.마량의 조용한 모습을 보려면 강진 가는 길로 오르는 찻길로 조금 걸어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풍광이 밝아지고 조용하다. 이곳저곳을 걸으며 흥겨운 아침햇살을 즐겼다. 물결 위에 부서지는 햇살은 늘 그렇게 흥겹다. 어제 무섭게 불던 바람은 오늘 쉬나 보다. 아니면 지난 밤 늦게까지 그렇게 몰아쳤으니 저도 늦잠을 자는 모양이다.
마량의 아침은 아무 볼거리가 없다. 여느 곳처럼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마량이 좋다. 맑은 햇빛이 좋고 바다가 좋고 필부들이 살아가는 일상이 좋다. 지저분한 거리와 어지러운 간판이 언제 깨끗해지나 하지만 살림이라는 것이 늘 그렇게 지저분한 것 아니겠는가. 설거지통에 가득한 식기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옷가지들을 그대로 둔 채 허겁지겁 직장으로 향하는 맞벌이 부부들처럼 마량의 아침도 아무 화장 없이 그렇게 햇빛 속에 있다. 무대 위에 선 배우들의 짙은 화장처럼 서울의 아침 역시 언제나 치장으로 시작하지만 이곳은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 모습 그대로 시작한다.
산다는 것은 약간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망설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며 미련이며 우유부단함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것을 후회하고 그것이 차마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량의 밤에는 처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한 '사랑' 일반에 대한 통찰, 마량의 아침에는 날 것 그대로 펄떡이는 작은 어촌의 풍경에서 시작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성찰. 지나간 날에 대한 아쉬움을 타박하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산다는 것이라고 여기는 그의 따뜻함이 좋다.
관산 방촌리
-날은 미칠 듯 맑은데 오래 묵은 매화 한 그루 만발해 있다
어떻게 이런 벽지에서 왕비가 간택되었을까? 어떤 정치적 고려였을까? 아니면 젊은 왕자가 천하를 주유하다 이곳에서 밭 매는 처자를 보고 한눈에 반한 것일까? 따지고 보면 실가닥처럼 가는 우연이 서서히 가닥을 풀어가다가 어찌할 수 없는 필연으로 변하는 것이 인간사가 아니던가. 우리는 살아가며 정교한 논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정치적 안배와 전략적 고려를 순수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왕과 왕비의 관계가 어찌 순수한 사랑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남편과 아내의 일이 어찌 또 순수한 사랑없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얼마나 좋은 집인가. 이곳에서 공부하고 거닐고 또 달을 보고 구름 떠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달 같고 구름 같고 해 같은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날은 미칠 듯 맑고 밝은데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서 한 노인이 감자밭을 손질하고 있다. 가서 인사를 하였더니 얼굴이 허물어지도록 웃었다.
동무란 말을 참 오랜만에 듣는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른들은 친구를 그렇게 불렀다. 언어도 이데올로기에 따라 변한다. 투명한 단어에 색칠을 하고 그 색깔에 따라 가려 쓴다. 동백이 웃을 일이다. 초록빛 잎과 붉은 꽃잎을 가진 동백나무 하나가 아군도 되고 적군도 된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끝이 없다.
-초록색 꽃잎과 붉은 꽃을 가진 동백나무보다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여관에서, 그리움으로
함께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면 함께 있고 싶다. 함께 있다 혼자 있게 되면 그립고, 혼자 있다 함께 있게 되면 작은 일로도 서로 다툰다. 그렇게 얼고 녹고 다시 얼고 녹으면서 마침내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또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움이며 질투이며 욕설이며 상처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루함이며 떠남이며 귀환이며 눈물이다. 누구도 사랑이라는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다이내믹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둘러보라. 사랑만큼 환상하게 못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 그릇된 사랑도 있고 인고의 사랑도 있다. 그것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또 있겠는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지닌 인생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 그것은 축복이다.
처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오늘 밤은 그저 그리움 속에 그녀의 목소리를 가만히 놓아두었다.
마량의 아침
-산다는 건 망설임이며 차마 어쩔 수 없음이다.
아침에 일어나 마량의 거리를 걸었다. 거리랄 것도 없다. 해안선을 따라 1킬로미터 정도 되는 길인데, 산 밑으로 가옥들이 들어서 있을 뿐이다.마량의 조용한 모습을 보려면 강진 가는 길로 오르는 찻길로 조금 걸어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풍광이 밝아지고 조용하다. 이곳저곳을 걸으며 흥겨운 아침햇살을 즐겼다. 물결 위에 부서지는 햇살은 늘 그렇게 흥겹다. 어제 무섭게 불던 바람은 오늘 쉬나 보다. 아니면 지난 밤 늦게까지 그렇게 몰아쳤으니 저도 늦잠을 자는 모양이다.
마량의 아침은 아무 볼거리가 없다. 여느 곳처럼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마량이 좋다. 맑은 햇빛이 좋고 바다가 좋고 필부들이 살아가는 일상이 좋다. 지저분한 거리와 어지러운 간판이 언제 깨끗해지나 하지만 살림이라는 것이 늘 그렇게 지저분한 것 아니겠는가. 설거지통에 가득한 식기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옷가지들을 그대로 둔 채 허겁지겁 직장으로 향하는 맞벌이 부부들처럼 마량의 아침도 아무 화장 없이 그렇게 햇빛 속에 있다. 무대 위에 선 배우들의 짙은 화장처럼 서울의 아침 역시 언제나 치장으로 시작하지만 이곳은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 모습 그대로 시작한다.
산다는 것은 약간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망설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며 미련이며 우유부단함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것을 후회하고 그것이 차마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량의 밤에는 처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한 '사랑' 일반에 대한 통찰, 마량의 아침에는 날 것 그대로 펄떡이는 작은 어촌의 풍경에서 시작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성찰. 지나간 날에 대한 아쉬움을 타박하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산다는 것이라고 여기는 그의 따뜻함이 좋다.
관산 방촌리
-날은 미칠 듯 맑은데 오래 묵은 매화 한 그루 만발해 있다
어떻게 이런 벽지에서 왕비가 간택되었을까? 어떤 정치적 고려였을까? 아니면 젊은 왕자가 천하를 주유하다 이곳에서 밭 매는 처자를 보고 한눈에 반한 것일까? 따지고 보면 실가닥처럼 가는 우연이 서서히 가닥을 풀어가다가 어찌할 수 없는 필연으로 변하는 것이 인간사가 아니던가. 우리는 살아가며 정교한 논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정치적 안배와 전략적 고려를 순수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왕과 왕비의 관계가 어찌 순수한 사랑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남편과 아내의 일이 어찌 또 순수한 사랑없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얼마나 좋은 집인가. 이곳에서 공부하고 거닐고 또 달을 보고 구름 떠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달 같고 구름 같고 해 같은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날은 미칠 듯 맑고 밝은데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서 한 노인이 감자밭을 손질하고 있다. 가서 인사를 하였더니 얼굴이 허물어지도록 웃었다.
동무란 말을 참 오랜만에 듣는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른들은 친구를 그렇게 불렀다. 언어도 이데올로기에 따라 변한다. 투명한 단어에 색칠을 하고 그 색깔에 따라 가려 쓴다. 동백이 웃을 일이다. 초록빛 잎과 붉은 꽃잎을 가진 동백나무 하나가 아군도 되고 적군도 된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끝이 없다.
-초록색 꽃잎과 붉은 꽃을 가진 동백나무보다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그리움을 자아내는 마량의 고적한 밤-사진: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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