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지속가능한 지구살이를 위해 재활용/친환경/ DIY 공부 중

독서일기/필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8

잡테리어 목공샘 2018. 3. 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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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망창월
아버님께

가을이라 옥창에 걸리는 달도 밤마다 둥글게 자랍니다. 가을은 '글 읽던 밤에 달이 떠 있는 우물물을 깨뜨리고 정갈하고 시원한 냉수를 뜨며' 잠시 시름을 쉬고 싶은 계절입니다.

옥창 속의 역마
계수님께

가게에 내놓은 사과알의 색깔과 굵기로 가을의 심도를 측정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풀빛의 어린 사과가 가게의 소반 위에서 가을과 함께 커가면 사과나무가 없는 출근길에 평소 걸음이 바쁘던 도회인들도 그나마 사과 한 알만큼의 가을을 얻게 됩니다.

역마살은 떠돌이 광대넋이 들린 거라고도 하고 길신이 씌운 거라고도 하지만, 아직도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꿈 찾아나서는 방랑이란 풀이를 나는 좋아합니다. 하늘 높이 바람 찬 연을 띄워놓으면 얼레가 쉴 수 없는 법. 안거란 기실 꿈의 상실이기 쉬우며 도리어 방황의 인고 속에 상당한 분량의 꿈이 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사간 집을 찾으며
부모님께

저의 염려는 오히려 번지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업체 같은 고층 빌딩 속에서 대체 어떤 모양의 가정이 가능한 것인지. 아버님께서는 수유리의 산보로를 잃고, 어머님은 장독대를 잃어 갈 데 없이 TV 할머니가 되지 않으시는지.
생활의 편의와 이기들이 생산해내는 그 여유가 무엇을 위하여 소용되는지. 그 수많은 층계, 싸늘한 돌 계단 하나하나의 '높이'가 실상 흙으로부터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나 아닌지...

- 시골로 귀농한 이유도 이와 같다. 현관을 나서도, 빌라 주차장에 가서도 온통 시멘트 바닥과 아스팔트 포장만 가득한 도시. 세 살짜리 큰 아들이 밟는 집 주변 그 어디도 '흙'이 없었다. 아스팔트 길로 한참을 가야 겨우 학교 운동장에 있는 흙바닥을 찾을 수 있던 시절... 그 곳에서 뛰어 놀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던 큰 아들.
귀농 후 마을 사무장 시절, 농촌 체험 오는 아이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벌레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살기 좋을까, 벌레도 못사는 곳이 좋을까?'
물론 벌레가 출현한 돌발상황에 하는 말이지만 알아 듣는 아이들의 표정은 참 볼 만하다.
옥중에서 신영복선생님의 가족이 수유리의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나보다. 옥중 염려가 절절하면서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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