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지속가능한 지구살이를 위해 재활용/친환경/ DIY 공부 중

독서일기/필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17

잡테리어 목공샘 2018. 4. 9. 06:20
반응형
창문과 문
형수님께

이번 이사 때 가장 두고 오기 아까웠던 것은 '창문'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능선과 오뉴월 보리밭 언덕이 내다보이는 창은 우리들의 메마른 시선을 적셔주는 맑은 샘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문'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먼 곳에 착목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여미는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둠이 일깨우는 소리
계수님께

어둠은 새로운 소리를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놀랍게도 나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어둠은 나 자신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캐어물으며 흡사 피사체를 좇는 탐조등처럼 나 자신을 선연히 드러내주었습니다. 교도소의 응달이 우리 시대의 진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주듯 하룻밤의 어둠이 내게 안겨준 경험은 찬물처럼 정신 번쩍 드는 교훈이었습니다.
새벽녘이 되자, 지금껏 방안의 불빛과 싸우느라 더디게 더디게 오던 새벽이 성큼성큼 다가와 훨씬 이르게 창문을 밝혀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참을 맞아하는 법이지만 어제와 오늘의 중간에 '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큼직한 가능성, 하나의 희망을 마련해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담 넘어 날아든 나비 한 마리
계수님께

담 넘어 날아든 무심한 나비 한 마리가 펼쳐보인 봄의 뜻은, 이곳에는 꽃나무가 없어 봄조차 가난하다던 푸념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뉘우치게 합니다.

서도와 필재(전문)
형수님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씨란 타고나는 것이며 필재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명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재가 있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그 재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견 빼어나긴 하되 재능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손끝의 교를 벗어나기 어려운 데 비하여, 필재가 없는 사람의 글씨는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기 때문에 그 속에 혼신의 힘과 정성이 배어 있어서 '단련의 미'가 쟁쟁히 빛나게 됩니다.
만약 필재가 뛰어난 사람이 그 위에 혼신의 노력으로 꾸준히 쓴다면 이는 흡사 여의봉 휘두르는 손오공처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런 경우는 관념적으로나 상정될 수 있을 뿐, 필재가 있는 사람은 역시 오리새끼 물로 가듯이 손재주에 탐닉하게 마련이라 하겠습니다.
결국 서도는 그 성격상 토끼의 재능보다는 거북이의 끈기를 연마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글씨의 훌륭함이란 글자의 자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묵 속에 갈아넣은 정성의 양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평가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이와 같아서 타고난 얼굴의 조형미보다는 그 사람의 지혜와 경험의 축적이 내밀한 인격이 되어 은은히 배어나는 아름다움이 더욱 높은 것임과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첩경과 행운에 연연해하지 않고, 역경헤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과 권부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탄회한...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우직함'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벌써 4월도 중순, 빨래 잘 마르는 계절입니다. 지난번 어머님 접견 때 주용이 유치원 졸업식 이야기 듣던 생각이 납니다. 제가 밖에 있을 적에는 세상에 없던 녀석들이 성큼성큼 자라고 있는 이야기는 '유수 같은 세월'을 실감나게 합니다.

감옥 속의 닭 '짜보'
계수님께

창문에서 크게 떼어서 아마 스무남은 걸음 될까. 양재공장 입구를 엇비슷이 비킨 자리에 '짜보'라는 인도네시아 원산의 자그마한 닭 한 쌍이 살고 있습니다. 새벽 4시쯤 되면 어김없이 울기 시작하여 이곳에 잠시 산촌의 아침을 만들어줍니다.
이 닭은 양재공장 사람들이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갇힌 사람들이 또 무엇을 가둔다는 것이 필시 마음 아픈 일일 터인데도, 역시 '키운다'는 기쁨은 그 아픔을 갚고도 남는가 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