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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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필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16

잡테리어 목공샘 2018. 4. 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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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
아버님께

겨울 동안은 서로의 체온이 옆사람을 도와 혹한을 견디던 저희들이 이제 여름에는 자기의 체온으로 옆사람을 불 때는 형국이 되어 물것들의 등살에 더하여 당찮은 미움까지 만들어내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저께 밤중의 일이었습니다. 여태 없던 서늘한 바람기에 눈을 떴더니, 더위에 지친 동료를 위하여 방 가운데서 부채질하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엄상은 정목을 가려내고 설중에 매화 있듯이 고난도 그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을  묻고 있는가 봅니다. 이러한 인정을 보지 못하고 지레 '미움'을 걱정함은 인간의 신성의 깊음에 대한 스스로의 단견외에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청의삭발승
형수님께

옛날에 수염이 길고 지혜 또한 깊은 어느 노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짙게 서린 무기를 보고 이곳에는 훗날 큰 절이 서리라는 예언을 남기고 표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예언이란 엇비슷이 적중하는 데에 묘가 있는가 봅니다. 수천의 청의삭발승들이 고행 수도하는 교도소는 가히 큰 절이라 하겠습니다.
'잠 에너지'로 어제의 피곤을 가신 이곳의 우리들은 새벽의 청신한 공기를 양껏 들이마시며 기차처럼 어느새 지나가버릴 쾌청한 가을 날씨를 차마 아까워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씨 속에 들어 있는 인생
부모님께

글씨도 그 속에 인생이 들어 있는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어떤 때는 글씨의 어려움을 알기 위해서 글씨를 쓰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창백한 손
계수님께

읽을 책이 몇 권 밀리기도 하고 마침 가을이다 싶어 정신 없이 책에 매달리다가, 이러는 것이 잘 보내는 가을이 못됨을 깨닫습니다. 몸 가까이 있는 잡다한 현실을 그 내적 연관에 따라 올바로 이론화해내는 역량은 역시 책 속에서는 적은 분량밖에 얻을 수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서가 남의 사고를 반복하는 낭비일 뿐이라는 극언을 수긍할 수야 없지만, 대신 책과 책을 쓴 모든 '창백한 손'들의 한계와 파당성은 수시로 상기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불사춘광 승사춘광. 봄빛 아니로되 봄으 웃도는 아름다움이 곧 가을의 정취라 합니다. 그러나 등 뒤에 겨울을 데리고 있다 하여 가을을 반기지 못하는 이곳의 가난함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생각의 껍질
아버님께

가을날 새벽이 자라고 있는 창 밑에서 저희는 이따금 책장을 덮고 추상같이 엄정한 사색으로 자신을 다듬어가고자 합니다. 영위하는 일상사와 지닌 생각이 한결같지 못하면 자연 생각이 공허해지게 마련이며 공허한 생각은 또한 일을 당함에 소용에 닿지 못하여 한낱 사변일 뿐이라 믿습니다. 저희들이 스스로를 통찰함에 특히 통렬해야 함이 바로 이런 것인즉, 속빈 생각의 껍질을 흡사 무엇인 양 챙겨두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문자를 구하는 지혜가 올바른 것이 못됨은, 학지어행, 모든 배움은 행위 속에서 자기를 실현함으로써 비로소 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항시 당면의 과제에 맥락을 잇되, 오늘의 일감 속에다 온 생각을 가두어두지 않고 아울러 내일의 소임을 향하여 부단히 생각을 열어나가야 함이 또한 쉽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발 밑에 느껴지는 두꺼운 땅
계수님께

손가락의 아픔보다는 서툰 망치질의 부끄러움이 더 크고, 서툰 솜씨의 부끄러움보다는 제법 일꾼이 된 듯한 흐뭇함이 더 큽니다.
더러 험한 일을 하기도 하는 징역살이가 조금씩 새로운 나를 개발해줄 때 나는 발 밑에 두꺼운 땅을 느끼듯 든든한 마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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