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지속가능한 지구살이를 위해 재활용/친환경/ DIY 공부 중

독서일기/필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15

잡테리어 목공샘 2018. 4. 6.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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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계수님께

나한테 묻는다면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불빛이라고 하겠습니다. 새까만 연탄구멍 저쪽의 아득한 곳에서부터 초롱초롱 눈을 뜨고 세차게 살아오르는 주홍의 불빛은 가히 겨울의 꽃이고 심동의 평화입니다.
천 년도 더 묵은, 검은 침묵을 깨뜨리고 서슬 푸른 불꽃을 펄럭이며 뜨겁게 불타오르는 한겨울의 연탄불은, 추위에 곧은 손을 불러모으고,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젖은 양말을 말리고... 그리고 이따금 겨울 창문을 열게 합니다.

봄싹
형수님께

15척 담은 봄도 넘기 어려운지 봄은 밖에 먼저 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나절의 봄나들이를 맞아 저마다 잠자던 감성의 눈을 크게 뜨고 봄을 들이마시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나는 들판을 기웃거리다가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을 놀라움으로 깨달았다. 사람에게 봄기운을 먼저 가져오는 것은 거루고 가꾸어준 꽃나무보다 밟고 베어냈던 잡초라는 것을. 들풀은 모진 바람 속에서도 잔설을 이고 자랄 뿐 아니라 그렇게 자라는 풀잎마다 아쉬운 사람들이 나물로 먹어온 것도...'
'지금은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의 이 일절은 스스로 잡초섶에 몸을 둔 우리들로 하여금, 봄이 늦다고 투정하는 대신에 응달에 버티고 선 겨울의 엉어리들 틈 사이에서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를 봄싹을 깨닫게 하는 높은 채찍입니다.

악수
계수님께

우리는 악수하는 대신에, 상대방의 오른손과 나의 왼손을, 또는 반대로 상대방의 왼손과 나의 바른손을 잡는, 좀 독특한 악수를 곧잘 나눕니다. 악수의 흔한 형식을 파괴함으로써 우리들의 마음을 악수와는 다른 그릇에 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의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오래전부터 해왔듯이 아예 상대방의 손이나 팔을 만져보기도 합니다. 몸 성함의, 무사함의 원시적 확인입니다. 내게도 물론 보통의 악수를 나누는 사람과 그런 악수로는 어딘가 미흡한 사람의 다소 어렴풋한 구별이 없지 않습니다.

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
계수님께

이기를 생산한다기보다 '필요' 그 자체를 무한정 생산해내고 있는 현실을 살면서 오연히 자기를 다스려 나가기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은 그 속이 빔으로써 쓰임이 되고 넉넉함은 빈 몸에 고이는 이치를 배워 스스로를 당당히 간수하지 않는 한, 척박한 땅에서 키우는 모든 뜻이 껍데기만 남을 뿐임이 확실합니다.

한 그릇의 물에 보름달을 담듯이(전문)
계수님께

얼마 전에 2급 우량수방으로 전방하였습니다.무기수답지 않은 자그마한 보따리 하나 메고,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열한 가족의 받은 징역이 도합 242년, 지금까지 산 햇수가 140년. 한마디로 징역을 오래 산 무기수와 장기수의 방입니다. 응달 쪽과는 내복 한 벌 차라는 양지 바른 방이라든가, 창 밖에 벽오동 푸른 잎사귀 사이로 산경이 아름답다는 점도 물론 좋은 점이지만, 나에게는 역경에서 삶을 개간해온 열 사람의 역사를 만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가슴 뿌듯한 행운입니다.
스스로 신입자가 되어 자기 소개를 하면서, 나는 판에 박은 듯한 소개나 사람의 거죽에 관한 것 대신에, 될 수 있는 한 나의 정신의 변화, 발전 과정을 간추려 이야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내 딴에는 사람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는 노력의 일단이며, 자위와 변명의 도색을 허락치않는 제3자의 언어로 표현된 자기를 가져보려는 시도의 하나입니다. 짧은 시간에 대어 돌아가며 하는 대수롭지 않은 몇 마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나의 노력은 버들잎 한 장으로써도 천하의 봄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실함과, 한 그릇의 물에 보름달을 담는 유유한 시정을 지니고 싶어하는 소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번의 전방은 나의 생활에 찾아온 오랜만의, 그리고 큼직한 변화입니다. 이 변화가 가져다준 얼마간의 신선함은 우리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답보와 정신의 좌착을 질타해줍니다.
더 좋은 잔디를 찾다가 결국 어디에도 앉지 못하고 마는 역마의 유랑도 그것을 미덕이라 할 수 없지만 나는 아직은 달팽이의 보수와 칩거를 선택하는 나이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마살에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며 바다로 나와버린 물은 골짜기의 시절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옷자락을 적셔 유리창을 닦고 마음속에 새로운 것을 위한 자리를 비워두는 준비가 곧 자기를 키워나가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보리밭 언덕
형수님께

아침저녁으로 자동차와 소음 대신에 보리밭을 질러서 등하교한다는 것은, 도회지를 사는 어린이들에게는 또 한 사람의 어머니를 갖는 것과 맞먹는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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