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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115 중 뭔가를 잘할 수 있기까지(전문)

잡테리어 목공샘 2018. 3. 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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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잘할 수 있기까지(민들레 115 )

: 홍원의


반복학습의 의미

어린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아이들은 같은 비디오를 질리지도 않고 계속 보고 또 보면서 대사를 줄줄 외우기도 하고, 노래의 특정 소절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해서 부르곤 한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잘 기억하게 되는 건 당연하지만, 어린아이의 반복은 어른의 반복과 다른 특성이 있다. 겉보기에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지점을 건드린다. 같은 비디오를 봐도 볼 때마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고 새로운 맥락이 만들어진다. 노랫말도 처음에는 알아들은 수 없는 혀 짧은 소리를 내다가 점점 '개선'되어 또렷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그런 인식-반복-개선 행동을 즐기기에 연습량은 자연스럽게 많아진다.

이처럼 반복이 효과를 거두려면 매회 반복할 때마다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고 미세한 개선점을 찾아내어 바로잡는 시도를 해야 한다. 연주자는 연습할 때마다 음을 미세하게 교정한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거나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경우도 비슷하다. 지식은 그물처럼 서로 엮고 엮인다. 그물은 촘촘할수록 잘 끊어지지 않는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매번 '다른 관점에서' 반복해야 기억의 일부에서 망각이 오더라도 연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세상에 한 가지 관점으로만 정의되는 개념은 없다. 개념이든 사람이든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할 때 그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해할 때도, 닭볶음탕 요리법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관점에서만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피부색으로만 판단하는 것처럼 단편적인 사고방식이다.

'다른 관점에서 반복하는 것'은 마치 반죽을 쳐서 떡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같은 자리를 매번 똑같이 치면 조직이 질겨지지 않는다. 한번 친 자리를 뒤집어서 다시 치고, 반죽을 접어서 다시 치고, 뒤집어서 또 치고, 그렇게 '다르게' 반복해야 조직이 치밀하게 엉겨 붙는다. 같은 내용을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면 힘을 들이는 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시를 암송하더라도 똑같은 어투에 똑같은 운율로 읽는 것보다는, 이번 버전과 다음 버전을 다르게 암송해야 글의 맛이 더 치밀하게 엉겨 붙는다.

영단어를 단순히 반복해서 외우는 것은 실력 향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복으로 실력이 향상되려면, 매회 반복할 때마다 어떤 개선점을 찾아 고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악기 연습도, 언어나 수학 공부도 마찬가지다. 많은 양을 대강 배우기보다 적은 양을 여러 관점에서 치밀하게 치대어야 맥락이 탄탄하게 엮인다. 그렇게 여러 각도로 '치대면서' 그 분야의 맥락이 탄탄하게 엮이면 세월이 흘러도 그 내용을 절대 잊지 않게 된다. 사람의 두뇌는 수많은 뉴런이 서로 치밀하게 엮인 그래프 형태이기 때문이다.

 

즐긴다는 것

컴퓨터공학과에서 가장 무서운 친구들은 공부를 잘해서 A+를 받는 학생이 아니라 코딩을 취미로 하는 학생들이다. 심심해서 게임을 만들고, 맛집 찾기가 귀찮아서 맛집 검색 엔진을 만드는 친구들. 즐기기 때문에 고통 없이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을 수 있고, 그러니 코드로 무엇을 만들든 결과가 좋게 나온다. 이 친구들의 단점이라면 일반 교양과목 학점이 낮다는 것인데,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인정받는 학교 밖 세상에서 누가 더 좋은 결과를 낼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논어에서는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은 아는 것-좋아하는 것-즐기는 것-좋아하는 것-아는 것 식으로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처음에 약간 알면서 호감을 갖는 정도로 시작해서 점점 좋아하게 되고, 즐기게 되고, 그래서 더 좋아하고, 더 깊이 알게 되는 과정을 순환하면서 점점 앎이 깊어진다.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즐겨야 하는데, 이것이 강한 동기부여의 자극제가 된다.

아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삶의 질뿐만이 아니라 실력의 차이까지 포괄하는 말이다. 많이 즐기면 많이 좋아하게 되고, 많이 좋아하면 많이 알고자 하므로 실제로 많이 알게 된다.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게 되는지를 안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정말 좋아할 때 이렇게 말한다. '너랑 있으면 즐거워,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그래서 난 네가 좋아. 너를 더 잘 알고 싶어.' 우리는 즐겁기 때문에 좋아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더욱 잘 알게 된다. 애인과 함께 있는데 즐겁지 않다면, 그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을 찾으려면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운지를 보면 되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면 그 일을 하는 동안 즐거운지를 보면 된다.

그럼 즐긴다는 것은 어떤 걸까.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와 함께 있는 순간을 즐기고, 또 함께 있지 않을 때도 그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선물을 하면 좋아할까, 저런 영화를 보면 좋을까. 손을 잡으면 어떨까, 하는 가상의 실험을 매 순간 하는 것이다. 사람의 두뇌는 일종의 실험실이다. 모든 조건을 그대로 두고 하나의 조건을 바꾸었을 때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가를 테스트한다. 그 결과가 긍정적이면 우리는 다음에 애인을 만났을 때 이를 현실에서 적용하려 한다. 어떤 분야의 작업을 즐긴다는 것은 이와 마찬가지이다.

체스나 장기를 둘 때 '지금 이 말을 이렇게 움직이면 상대는 저렇게 움직이겠지, 그럼 나는 또 이렇게...' 이런 궁리를 하면서 둔다. 최종 목적은 왕을 잡는 것이지만, 첫 말을 놓을 때 왕을 잡는 마지막 수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수에서 적게는 한두 수, 많게는 대여섯 수까지 내다보는 것이 보통이다. 그 경우의 수에 상대방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또 다른 수를 생각해내며 지적인 스릴과 즐거움을 맛본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연애의 최종 목적을 결혼과 자손 번식이라고 논리적으로야 말할 수 있겠지만 보통은 그렇게 멀리 보지 않고 아주 가까운 미래, 이를테면 이번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100일 선물을 뭘 해주면 좋을지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정도만으로도 연애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당장 눈앞의 소소한 것들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깊이 멀리 가게 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저 먼 곳을 쳐다보는 데 시간을 많이 빼앗길수록 그 큰 짐이 현재의 소소한 작업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책임을 크게 느낄수록 결혼과 연애를 포기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성적에 대한 책임을 크게 느낄수록 지금 배우는 것을 즐기는 일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순순하게 현재에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아한다는 것이 조금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것이라면, 즐긴다는 것은 여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태도까지를 포함한다. 좋아함에는 시간 개념이 빠져 있지만, '즐김'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과거를 즐기거나 미래를 즐길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서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될수록 더욱 즐길 수 있다. 그냥 짠 맛과 달면서 짠 맛을 구분할수록, 경기장에서 선수 개개인의 차이와 선수 교체 시기를 가늠할수록, 전략적으로 땅볼과 안타의 쓰임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수록, 중국에서 미묘한 성조를 구분할수록, 바둑에서 단수의 여러 가지 쓰임을 구분할수록 우리는 더욱 즐길 수 있게 된다.

 

유창성과 교사의 역할

 미묘한 차이를 알고 구분하다는 것은 결국 해당 분야를 모델링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의 가짓수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 가지 수의 쓰임새가 늘어난다는 말이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기존 지식을 상황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면 갖가지 상황에 더 잘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선택지의 종류, 그러니까 대안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도가 늘어난다는 것은 유창해진다는 뜻이다.

위편삼절이라는 말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또 읽는 동안 책을 묶은 끈이 낡아서 세 번이나 끊어진다는 뜻이다. 어릴 적에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잃어가는 것 중 하나는 호기심이고 또 하나는 위편삼절의 태도이다. 사실 둘은 연결된 개념이기도 하다. 한 가지 대상을 놓고 이렇게 뜯어보고 저렇게 뜯어보고 물어보고 씹어보고 당겨보는 태도. 어린아이는 매사에 그런 자세로 임하지만 성인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 한 대상을 하나의 방식으로 쉽게 해석한 뒤 던져버리고 새로운 대상을 찾는다. 그렇게 해서는 한 가지를 깊게 알 수 없다. 영어 교재를 사느라 돈은 돈대로 쓰고 실력은 늘지 않는다.

위편삼절을 지겹지 않게 할 수 있으려면 호기심과 예민함이 있어야 한다. 어떤 대상을 궁금해 하는 태도. 그리고 같은 대상을 다른 눈으로 살필 수 있는 예민한 눈. 호기심 많은 사람이 대체로 창의적인 이유는, 호기심이라는 것 자체가 세상을 해석하는 여러 가지 잣대를 대어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제도권 학교가 제시하는 정답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왜 답이 하나뿐인지 납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공부를 쉽게 잘하는 학생은 '세상을 여러 관점에서 보는' 어릴 적 습관을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으로는 유창성을 획득하기 전까지 해당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어린아이가 첫 단어를 떼는 것은 돌 무렵이고, 완전한 문장을 말하기까지 일 년 정도가 더 걸린다. 그런데 말문이 한 번 터지고 나면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모국어로 쓰인 주면 정보를 닥치는 대로 흡수할 수 있게 된다. 다른 기술 습득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시험 점수나 눈에 드러나는 결과를 위해 해당 분야의 유창성 획득을 게을리하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에 변함이 없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잘하는 경우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선생님 말씀과 교과서 텍스트를 모조리 외우는 식으로 공부하는 학생. 출제자의 의도에 맞는 답을 작성하는 시험은 잘 보겠으나 약간이라도 비튼 문제에는 대응을 하지 못한다(또한 자신만의 무엇을 만들지 못한다). 두 번째 경우는 유창성을 이미 획득하고 같은 수업을 듣는 경우이다. 시험 문제에 답을 다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만들 능력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공부를 적당히 하고 시험을 잘 보고 자격증을 잘 따는 것이 목적이라면,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주어진 것만 달달 외우면 된다. 지겹고 하기 싫어도 꾹 참고 해내면 어느 정도는 우수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완전한 이해에 이르고자 한다면, 유창성을 가능한 초기에 획득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초기라는 것은 어린 나이를 뜻하는 게 아니라그 분야의 학습을 시작한 초기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가지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성인 특유의 태도만 버린다면 말이다.

아나운서로 입사할 때 한국어 시험을 본다.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입에 볼펜을 물고 발음을 교정하고, 미묘하게 틀리는 문법을 바로잡고, 맞는 듯하지만 잘못 쓰는 어휘를 골라내는 연습을 한다. 이때 교사는 학습자가 스스로 틀리는 줄 모르는 부분을 짚어주고, 이를 교정하도록 학습 방향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노래를 프로답게 부르기 위해서도 역시 교사가 필요하다.

수영이나 수학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이미 해당 분야의 유창성을 획득한 상태에서 이를 정밀하게 교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르게 말하면, 유창성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교사의 피드백은 그 효용이 적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교사의 역할은 초기 단계에서는 끊임없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학습자가 지속적으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유창성을 획득한 단계에서는 본인이 감지하지 못하는 오류를 정정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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