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만남]
구본형
1장 매화향 가득하니 봄이다
고흥반도
-봄은 늘 사람을 어쩔 줄 모르게 한다.
자연 속을 거닐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피곤함이 사라지는 것은 내가 그들로부터 많은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힘보다 자연과 신의 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은 자연에 가깝다.
땀이 흘러내린다. 몸은 솔직하다. 이렇게 산을 오르면 땀이 가슴과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호흡도 가빠진다. 심장이 뛰는 소리와 호흡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발에 빡빡한 압력이 걸린다. 조금 속도를 내면 압력은 더욱 강해진다. 속도를 내면 자신의 육체를 더 잘 알게 된다. 나이가 생각나고 헉헉거림 속에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빠르게 걸으면 나이를 알게 되고 천천히 걸으면 주위를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속도를 일단 자동차 같은 기계에게 위임해주면 나이도 경관도 살필 수 없게 된다.
자거나 먹는 것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살을 찌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먹을수록 아무데나 살이 붙고 더 많은 트림을 올리고 더 많은 방귀를 뀌게 된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는 여덟 개의 봉우리들이 어찌나 영준하고 야무져 보이는지 오리기 어려울 것 같더니, 산이 늘 그렇듯 일단 속으로 들면 길을 내어 품어준다. 우리 한국 사람들 같다. 겉으로는 폐쇄적이고 무뚝뚝하고 말 걸기도 어렵게 보이지만 서로 친해지면 속을 내줄 것처럼 정이 뚝뚝 흐른다. 한국인은 산과 같다. 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산인데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둘기장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마음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가면 산 냄새가 난다.
지리산 불무장등 무착대
-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고 있네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
시대는 변화한다. 절과 스님 또한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변하는 것이니 옛날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래서 출가 이전을 잊고 세속을 잊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을 잊으면 그것은 더 이상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변질이며 타락인 것이다.
다압리 매화마을
- 꽃은 절정인데 매향을 들을 수 없다.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향기가 후각적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적 마음의 흐름에 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아름다움은 감각의 경계를 벗어난다. 그래서 내면을 닦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내면적이다. 본질을 닦음을로써 타고난 자기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는 유행이 아니다. 머리카락에 노랑물을 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다고 백인이 되지 않는다.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초라하고 비루한 일이다. 비웃음만 살 뿐이다. 고양이가 되고 싶은 가여운 쥐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변화는 주변에서부터 핵심을 행하는 내면화 작업이다.
운주사
- 그러나 나는 쉬고 있는 부처가 좋다.
휴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히 쉬지 못한다. 늘 가장 하고 싶은 것이 푹 좀 쉬고 싶은 것인데 그러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휴식을 창조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휴식을 게으름과 소비로 인식한다.
서양인은 휴가가 길다. 한번 휴가를 내면 보통 몇 주일씩 놀고 쉰다. 그들은 고부가가치를 가진 경제의 톱니바퀴고 우리는 저부가가치 경제의 톱니바퀴다. 그들의 톱니바퀴가 천천히 돌아도 우리의 톱니바퀴는 허벌나게 빨리 돈다. 이것이 경제 구조의 차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고 있는 사회는 쉬어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부가가치가 낮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몸이 고단해야 겨우 먹고살 수 있다. 그들에게는 한 달쯤의 휴가가 일상적인데 우리에게는 이례적인 것이다. 이것처럼 명쾌한 차이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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