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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공간, 열린 공간
형수님께
긴장과 갈등으로 팽팽히 맞선 관계는 대자적 인식의 한 조건일 뿐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관계의 실상입니다. 관계를 맺고 난 후의 편안하게 길들여진 안거는 일견 '관계의 완성' 또는 '완숙한 관계'와 같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그것을 가져다준 관계 그 자체의 붕괴가 시작되고 있음을, 이미 붕괴가 끝나가고 있음을 허다히 보아왔기 째문입니다.
비단 갇혀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많은 사람들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튼튼한 연대감이야말로 닫힌 공간을 열고, 저 푸른 하늘을 숨쉬게 하며... 그리하여 긴장과 갈등마저 넉넉히 포용하는 거대한 대륙에 발 딛게 하는 우람한 힘이라 믿고 있습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봅니다.
보내주신 돈과 시계 잘 받았습니다. 잠겨 있는 옥방 안에서도 시계는 잘 갑니다. '막힌 공간에 흐르는시간'... 흡사 반칙 같습니다.
팔목에 시간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간에 각박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차피 무기징역은 유유한 자세를 필요로 합니다.
타락의 노르마
계수님께
꾸민 표정, 걸친 의상은 물론 지위, 재산, 학벌, 경력 등 소위 알몸이 아닌 모든 겉치레에 대하여 지극히 냉정한 시선을 키워두고 있습니다. 인간과 그 인간이 걸치고 있는 외식을 구별하는 이 냉정한 시선은 다른 곳에서는 여간해서 얻기 어려운 하나의 통찰임에 틀림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별로 가진 것이 없는 우리들에게는 귀중한 자산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사람의 가장 불우한 모습과, 그 사람의 가장 어두운 목소리로 그를 판단하는 것이며, 자칫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 가학적 악의를 드러내기 쉬우며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함을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 타인의 결함이 자기의 결함을 구제해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그 결함에서 먼저 인식하여 비슷한 것이라도 발견되면 서둘러 안도의 심정이 되는 것은 남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고약한 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많은 부분은 상황에 따라 굴절되어 표현되기 때문에 그때 그때의 구체적인 현상을 어떤 순수한 본질에 비추어 규정하려는 태도는 이상주의적 환상이 아니면 처음부터 부정적인 결론을 의도하는 비난 그 자체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징역살이만 하더라도 거기에는 수의가 요구하는 일정한 '타락의 노르마'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평균치이건, 또는 하나의 가정치이건 이 '노르마'는 수의를 입은 모든 사람을 사전적으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사회가 수인들을 보는 선입관에 그치지 않고 수인들이 자기 작신을 바라보는 경우에도 작용하는 이른바 안에서도 밖에서도 벗어나기 어려운 완고한 형틀입니다. 수인들로 하여금 징역 속에서 예의나 염치를 헌옷 벗듯 손쉽게 벗어버리게 하는 것도 이 '타락의 노르마'입니다.
사람의 많은 부분이 상황에 따라 굴절되어 표현됨과 동시에 반대로 상황이 사람의 많은 부분을 굴절시킨다는 사실을 수긍한다면 우리는 상황과 인간을 함께 타매하거나 함께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겸손한 생각을 길러야 합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 판단의 주체가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눈이 달리게 마련이고 자신의 그릇만큼의 강물밖에 뜨지 못합니다. 이러한 자신의 제한성과 특수성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한 자기의 생각과 견해를 넓혀나가기는 몹시 어럽다고 생각됩니다.
징역의 이데올로기(?) 속에 격납되어 있는 이 가학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은 어떤 형태로든 청산되어야 할 징역의 응달입니다. 그러나 징역이 아니면 얻기 어려운 냉정한 시각과 그 적나라한 인간학으로 해서 기존의 도덕적 베일, 분식과 허위로부터 시원하게 벗어난 자유로운 정신은 징역의 모든 중압을 보상해주고도 남는 값진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자유로운 정신은 계란이 병아리를 약속하듯 새로운 것에로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징역에 고유한 '타락의 노르마'가 부끄러운 것이기보다 오히려 쾌적한 것으로 느껴지고, 우리들의 옆에서 행해지는 방약무인의 언행이 노엽다기보다 가식 없는 실체를 보여주는 소중한 통찰로 생각됩니다.
민중의 창조(전문)
형수님께
형수님께서 보내주신 [민중 속의 성직자들] 그리고 돈 잘 받았습니다. 그들을 말미암으로써 우리가 사는 시대를 더욱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워주는 '응달의 사람들', 소외되고 억눌리고 버려진 사람들 속에 자기 자신을 심고 그들과 함께 고반을 드는 사람과 자비의 이야기들은 뜻있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크지 않는 목소리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의 뇌리를 줄곧 떠나지 않는 것은 "우리 시대의 민중은 누구인가?", "우리 사회의 민중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집요한 자문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민중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민중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한 그 시대, 그 사회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로서의 민중, 특히 격변기의 역사무대에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낸 경우의 민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 사회의 생생한 현재 상황 속에서 민중의 진정한 실체를 발견해내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착종하는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의 대립, 현실의 왜곡, 사실의 과장, 진실의 은폐 등 격렬한 싸움의 현장에서 민중의 참모습을 발견해내고 그것의 합당한 역량을 신뢰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껏 잡은 것이 민중의 '그림자'에 불과하거나 '그때 그곳의 우연'에다 보편적인 의미를 입히고 있는 등... 감상과 연민이 만들어낸 민중이란 이름의 허상이 우리들을 한없이 피곤하고 목마르게 합니다. 그것은 '왜 불행한가?'라는 불행의 원인에 대한 질문에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눈물의 예술'로 그 격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것은 위안을 줌으로써 삶을 상실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수년의 징역살이 그 일인칭의 상황을 살아오면서 민중이란 결코 어디엔가 기성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이 '창조'되는 것이라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응달의 불우한 사람들이 곧 민중의 표상이 아님은 물론, 민중을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가교가 되어주지도 않습니다. 민중을 불우한 존재로 선험하려는 데에 바로 감상주의의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민중은 당대의 가장 기본적인 모순을 계기로 하여 창조되는 '응집되고 증폭된 사회적 역량'입니다. 이러한 역량은 단일한 계기에 의하여 단번에 나타나는 가벼운 걸음걸이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장구한 역사 속에 점철된 수많은 성공과 실패, 그 환희와 비탄의 기억들이 민족사의 기저에 거대한 잠재력으로 묻혀 있다가 역사의 격변기에 그 당당한 모습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중을 이렇게 신성시하는 것도 실은 다른 형태의 감상주의입니다. 어떠한 시냇물을 따라서도 우리가 바다로 나아갈 수 있듯이 아무리 작고 외로운 골목의 삶이라 하더라도 그곳에는 민중의 뿌리가 뻗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중 특유의 민중성입니다. 부족한 것은 당사자들의 투철한 시대정신과 유연한 예술성입니다.
그 허상의 주변을 서성이며 민중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실패가 설령 그들 각인의 의식과 역량의 부족에 연유된 것이라 할지라도, 저는 그들 개인의 한계에 앞서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자체의 역사적 미숙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인식과 역량은 기본적으로는 사회적 획득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온 지 두 달입니다만 아직도 쓸고 닦고 파고 메우고 고르고... 크고 작은 일들로 주변이 어수선합니다. 그러나 새벽의 여름산에서 들려오는 산새소리, 때묻지 않은 자연의 육성은 갖가지 인조음에 시달려온 우리의 심신을 5월의 신록처럼 싱싱하게 되살려줍니다.
엿새간의 귀휴
계수님께
그러나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풍화되지 않고 하얗게 남아 있는 슬픔의 뼈 같은 것이 함몰된 세월의 공허와 더불어 잔잔한 아픔으로 안겨오기도 하였습니다. 짐지고 서서 사는 일에는 어지간히 이력이 났거니 생각해온 나로서는 의외다 싶을 정도로 힘겨웠고 가족들의 따뜻한 포용에도 좀체 풀리지 않는 '어떤 갈증'에 목말라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계수님이 편지에 적은 '애정의 안식처'에 대한 갈구였는지도 모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귀휴 기간 동안에 내가 힘부쳐 했던 아픔과 갈증은 나 자신의 조급하고 밭은 생각 때문이란 반성을 갖게 됩니다.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으려 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으려 하는' '마음의 가난'에 연유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형수님께
긴장과 갈등으로 팽팽히 맞선 관계는 대자적 인식의 한 조건일 뿐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관계의 실상입니다. 관계를 맺고 난 후의 편안하게 길들여진 안거는 일견 '관계의 완성' 또는 '완숙한 관계'와 같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그것을 가져다준 관계 그 자체의 붕괴가 시작되고 있음을, 이미 붕괴가 끝나가고 있음을 허다히 보아왔기 째문입니다.
비단 갇혀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많은 사람들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튼튼한 연대감이야말로 닫힌 공간을 열고, 저 푸른 하늘을 숨쉬게 하며... 그리하여 긴장과 갈등마저 넉넉히 포용하는 거대한 대륙에 발 딛게 하는 우람한 힘이라 믿고 있습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봅니다.
보내주신 돈과 시계 잘 받았습니다. 잠겨 있는 옥방 안에서도 시계는 잘 갑니다. '막힌 공간에 흐르는시간'... 흡사 반칙 같습니다.
팔목에 시간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간에 각박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차피 무기징역은 유유한 자세를 필요로 합니다.
타락의 노르마
계수님께
꾸민 표정, 걸친 의상은 물론 지위, 재산, 학벌, 경력 등 소위 알몸이 아닌 모든 겉치레에 대하여 지극히 냉정한 시선을 키워두고 있습니다. 인간과 그 인간이 걸치고 있는 외식을 구별하는 이 냉정한 시선은 다른 곳에서는 여간해서 얻기 어려운 하나의 통찰임에 틀림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별로 가진 것이 없는 우리들에게는 귀중한 자산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사람의 가장 불우한 모습과, 그 사람의 가장 어두운 목소리로 그를 판단하는 것이며, 자칫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 가학적 악의를 드러내기 쉬우며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함을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 타인의 결함이 자기의 결함을 구제해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그 결함에서 먼저 인식하여 비슷한 것이라도 발견되면 서둘러 안도의 심정이 되는 것은 남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고약한 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많은 부분은 상황에 따라 굴절되어 표현되기 때문에 그때 그때의 구체적인 현상을 어떤 순수한 본질에 비추어 규정하려는 태도는 이상주의적 환상이 아니면 처음부터 부정적인 결론을 의도하는 비난 그 자체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징역살이만 하더라도 거기에는 수의가 요구하는 일정한 '타락의 노르마'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평균치이건, 또는 하나의 가정치이건 이 '노르마'는 수의를 입은 모든 사람을 사전적으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사회가 수인들을 보는 선입관에 그치지 않고 수인들이 자기 작신을 바라보는 경우에도 작용하는 이른바 안에서도 밖에서도 벗어나기 어려운 완고한 형틀입니다. 수인들로 하여금 징역 속에서 예의나 염치를 헌옷 벗듯 손쉽게 벗어버리게 하는 것도 이 '타락의 노르마'입니다.
사람의 많은 부분이 상황에 따라 굴절되어 표현됨과 동시에 반대로 상황이 사람의 많은 부분을 굴절시킨다는 사실을 수긍한다면 우리는 상황과 인간을 함께 타매하거나 함께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겸손한 생각을 길러야 합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 판단의 주체가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눈이 달리게 마련이고 자신의 그릇만큼의 강물밖에 뜨지 못합니다. 이러한 자신의 제한성과 특수성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한 자기의 생각과 견해를 넓혀나가기는 몹시 어럽다고 생각됩니다.
징역의 이데올로기(?) 속에 격납되어 있는 이 가학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은 어떤 형태로든 청산되어야 할 징역의 응달입니다. 그러나 징역이 아니면 얻기 어려운 냉정한 시각과 그 적나라한 인간학으로 해서 기존의 도덕적 베일, 분식과 허위로부터 시원하게 벗어난 자유로운 정신은 징역의 모든 중압을 보상해주고도 남는 값진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자유로운 정신은 계란이 병아리를 약속하듯 새로운 것에로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징역에 고유한 '타락의 노르마'가 부끄러운 것이기보다 오히려 쾌적한 것으로 느껴지고, 우리들의 옆에서 행해지는 방약무인의 언행이 노엽다기보다 가식 없는 실체를 보여주는 소중한 통찰로 생각됩니다.
민중의 창조(전문)
형수님께
형수님께서 보내주신 [민중 속의 성직자들] 그리고 돈 잘 받았습니다. 그들을 말미암으로써 우리가 사는 시대를 더욱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워주는 '응달의 사람들', 소외되고 억눌리고 버려진 사람들 속에 자기 자신을 심고 그들과 함께 고반을 드는 사람과 자비의 이야기들은 뜻있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크지 않는 목소리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의 뇌리를 줄곧 떠나지 않는 것은 "우리 시대의 민중은 누구인가?", "우리 사회의 민중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집요한 자문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민중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민중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한 그 시대, 그 사회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로서의 민중, 특히 격변기의 역사무대에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낸 경우의 민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 사회의 생생한 현재 상황 속에서 민중의 진정한 실체를 발견해내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착종하는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의 대립, 현실의 왜곡, 사실의 과장, 진실의 은폐 등 격렬한 싸움의 현장에서 민중의 참모습을 발견해내고 그것의 합당한 역량을 신뢰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껏 잡은 것이 민중의 '그림자'에 불과하거나 '그때 그곳의 우연'에다 보편적인 의미를 입히고 있는 등... 감상과 연민이 만들어낸 민중이란 이름의 허상이 우리들을 한없이 피곤하고 목마르게 합니다. 그것은 '왜 불행한가?'라는 불행의 원인에 대한 질문에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눈물의 예술'로 그 격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것은 위안을 줌으로써 삶을 상실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수년의 징역살이 그 일인칭의 상황을 살아오면서 민중이란 결코 어디엔가 기성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이 '창조'되는 것이라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응달의 불우한 사람들이 곧 민중의 표상이 아님은 물론, 민중을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가교가 되어주지도 않습니다. 민중을 불우한 존재로 선험하려는 데에 바로 감상주의의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민중은 당대의 가장 기본적인 모순을 계기로 하여 창조되는 '응집되고 증폭된 사회적 역량'입니다. 이러한 역량은 단일한 계기에 의하여 단번에 나타나는 가벼운 걸음걸이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장구한 역사 속에 점철된 수많은 성공과 실패, 그 환희와 비탄의 기억들이 민족사의 기저에 거대한 잠재력으로 묻혀 있다가 역사의 격변기에 그 당당한 모습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중을 이렇게 신성시하는 것도 실은 다른 형태의 감상주의입니다. 어떠한 시냇물을 따라서도 우리가 바다로 나아갈 수 있듯이 아무리 작고 외로운 골목의 삶이라 하더라도 그곳에는 민중의 뿌리가 뻗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중 특유의 민중성입니다. 부족한 것은 당사자들의 투철한 시대정신과 유연한 예술성입니다.
그 허상의 주변을 서성이며 민중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실패가 설령 그들 각인의 의식과 역량의 부족에 연유된 것이라 할지라도, 저는 그들 개인의 한계에 앞서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자체의 역사적 미숙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인식과 역량은 기본적으로는 사회적 획득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온 지 두 달입니다만 아직도 쓸고 닦고 파고 메우고 고르고... 크고 작은 일들로 주변이 어수선합니다. 그러나 새벽의 여름산에서 들려오는 산새소리, 때묻지 않은 자연의 육성은 갖가지 인조음에 시달려온 우리의 심신을 5월의 신록처럼 싱싱하게 되살려줍니다.
엿새간의 귀휴
계수님께
그러나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풍화되지 않고 하얗게 남아 있는 슬픔의 뼈 같은 것이 함몰된 세월의 공허와 더불어 잔잔한 아픔으로 안겨오기도 하였습니다. 짐지고 서서 사는 일에는 어지간히 이력이 났거니 생각해온 나로서는 의외다 싶을 정도로 힘겨웠고 가족들의 따뜻한 포용에도 좀체 풀리지 않는 '어떤 갈증'에 목말라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계수님이 편지에 적은 '애정의 안식처'에 대한 갈구였는지도 모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귀휴 기간 동안에 내가 힘부쳐 했던 아픔과 갈증은 나 자신의 조급하고 밭은 생각 때문이란 반성을 갖게 됩니다.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으려 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으려 하는' '마음의 가난'에 연유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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