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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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필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3

잡테리어 목공샘 2018. 3. 2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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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토 위에 쓰는 글

지금부터 걸어서 건너야 할 형극의 벌판 저쪽에는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등댓불처럼 명멸한다. 그렇다.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 고달픈 다리를 끌고 석산빙하라도 건너서 '눈물겨운 재회'로 향하는 이 출발점에서 강한 첫발을 딛어야 한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커다란 기쁨이 작은 슬픔으로 말미암아 그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일은 아무래도 드물 것이라 생각된다. 슬픔보다는 기쁨이 그 밀도가 높기 때문일까. 아니면 슬픔이든 기쁨이든 우리의 모든 정서는 우리의 생명에 봉사하도록 이미 소임이 주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지금부터 짊어지고 갈 슬픔의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감당해낼 힘이 나의 내부에,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풍부하게, 충분하게 묻혀 있다고 믿는다.
슬픔이나 비극을 인내하고 위로해주는 기쁨, 작은 기쁨에 대한 확신을 갖는 까닭도, 진정한 기쁨은 대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만약 물에서 오는 것이라면 작은 기쁨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어렵겠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믿어도 좋다. 수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70년대의 벽두

바깥에서는 70년대의 대망에 모두들 가슴이 부풀고 희망찬 설계가 한창인 모양이지만 감옥에 갇혀 앉아 있는 내게는 고속도로도, 백화점도, 휴일도, 연말도, 보너스도, 친구도 없이 쇠창살이 질러 있는 창문 하나만 저만치 벽을 열어주고 있을 뿐이다.
전망이 없는 이 창문을 향하여 나는 나의 가족과 나의 사랑과 나의 청년을 읽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70년대는 이 창문에서부터 밝아왔다.

식사 마치고 숭늉(누룽지를 넣고 주전자에 끓인 것)까지 마신 날이면 배고프지 않는 도야지들의 행복(?)이 복부에 묵직하다. 식사 중이나 식사 후에도 나는 많은 사람의 인사를 받는 셈이다. 1동 입구의 1호에 있는 장기수, 때로는 7동의 45호 장기수, 사형수까지 놀러(?)와서  잠깐 보고 간다. 불행은 불행끼리 위로가 된다.

이 시간이 하루의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생각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불 속에 발뻗고 편안히 누웠기 때문이며 고달픈 하루가 지나갔다는 이른바 '세월'을 보낸 느낌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리하여 이튿날 아침 기상 나팔이 불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시작되며 또 똑같은 내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무의미하고 단조로운 나날의 반복 속에서 수감자들은 모든 동작과 사고가 기계처럼 습관화되어버린다. 더구나 이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는 6각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을 중심으로 6개의 긴 사동이 6개의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6개 사동 중의 어느 사동도 동,서,남,북의 정방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한마디로 이 6각 속에서는 어느새 방향감각이 흐려진다. 이 점을 노려 계획된 설계인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동서남북 중의 어느 하나도 확실하게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이러한 방향감각의 상실에다 기계처럼 단조롭고 습관화된 나날들, 실로 힘든 하루하루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인가 새로운 의욕과 창의, 이런 것들이 무척 아쉬워지며,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괴롭고 서글픈 하루의 마지막을 알리는 취침 나팔소리마저 자지러지고 나면 이 8호 감방에도 이윽고 무덤 속 같은 정적이 찾아든다. 가끔 악몽에 시달리는 잠꼬대가 이 정적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내일 아침 기상 나팔소리가 칼끌같이 이 정적을 쪼갤 때까지 여기 이 감방은 그대로 하나의 무덤이 된다.

고성 밑에서 띄우는 글

하나의 가상이 무너질 때, 허황한 착각에서 깨어날 때, 퍼뜩 제정신이 들 때, 우리는 다시 침통한 마음이 됩니다. 이를테면 자물쇠 채우는 금속성의 마찰음이 귓전을 칠 때, 또는 취침 나팔의 긴 여운이 울먹일 때, 또는 잠에서 막 깨어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런 때에는 어김없이 현실의 땅바닥에 떨어져버린 한 마리씩의 깃이 젖은 새처럼 풀죽은 꼴이 됩니다.

감옥의 벽은 태풍에도 꿈적 않을 만큼 견고하고, 높고 작은  반달창은 해가 떴는지 별이 떴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얻은 평정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러한 평정함이 도대체 나를 무엇으로 만들어갈 것인가. 주룩주룩 그치지 않는 빗소리는 이런 나의 심경을 축축하고 무거운 곳으로 끌어내리고 마침내 질퍽한 진흙바닥에 나앉게 합니다. 어깨가 젖고 가슴이 젖는 듯한 무거운 상념에 젖어듭니다. 이처럼 빗소리에 새삼스레 무거운 마음이 되는 까닭은 아직도 내게 숱한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미래를 창백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사실 요사이 나는 지난 일들을 자주 떠올리고, 또 그것들을 미화하는 짓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과거가 가장 찬란하게 미화되는 곳이 아마 감옥일 것입니다. 감옥에는 과거가 각박한 사람이 드뭅니다. 감옥을 견디기 위한  자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이 자위는 참혹한 환경에 놓인 생명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명운동 그 자체라고 생각됩니다. 자위는 물론 엄한 자기성찰, 자기비판에 비하면 즉자적이고 감성적인 생명운동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그것이 갖는 의미와 필요 대하여 너무 심하게 폄하할 생각이 없습니다.
불모의 영토마다 자리잡고 있는 과거라는 이름의 숲은 실상 한없이 목마른 것입니다. 그늘도, 샘물도, 기대앉을 따뜻한 바위도 없습니다. 머물 수 있는 곳이 못됩니다. 나는 벽 앞에 정좌하여 동공을 나의 내부로 열기로 하였습니다. 내부란 과거와 미래의 중간입니다. 과거를 미화하기도 하고, 현재를 자위하기도 하고, 미래를 전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색이 머리 속의 관념으로서만 시종하는 것이고 보면, 앞뒤도 없고 선후도 없어 전체적으로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려 합니다. 숲이 아님은 물론이고, 정정한 상록수가 못됨도 사실입니다. 비옥한 토양도 못되고 거두어줄 손길도 창백합니다. 염천과 폭우, 엄동한설을 어떻게 견뎌나갈지 아직은 걱정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이 나무는 나의 내부에 심은 나무이지만 언젠가는 나의 가슴을 헤치고 외부를 향하여 가지 뻗어야 할 나무입니다.

-숲과 나무에 대한 선생님의 여러 가지 말씀들이 생각난다. 출소 후 다듬어진 말씀들인지, 옥중에서 정리된 말씀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고성밑에서 띄우는 글'에서부터 '나무'와 '숲'은 선생님 사유의 근간이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때부터 키워오신 선생님의 '나무', 그 '나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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