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지속가능한 지구살이를 위해 재활용/친환경/ DIY 공부 중

독서일기/필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4

잡테리어 목공샘 2018. 3. 24. 06:56
반응형
객관적 달성보다 주관적 지향을
동생에게

독방은 강한 개인이 창조되는 영토이다.

연말이, 새해가 다가왔다. 유정한 시간의 대하위에 팻말을 박아 연월을 정분하는 것은 아마 그 표적 앞에서 스스로의 옷깃을 여미어 바로 하자는 하나의 작은 '약속'인지도 모른다.

그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신영복선생님의  대전교도소 복역기간 중의 글을 엮은 것이다. 1971년부터 1986년. 내가 3살때부터 고1까지의 기간이다.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무려 16년을 대전교도소에 갇혀 계신 것이다.(물론 전체 수형생활은 20년 20일)
정치, 사회, 역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무럭무럭 자란 그 시간이 웬지 죄스럽다. 무엇을 위해 그 시절 나는  자라났을까.

형님의 결혼
형님께

형님의 결혼은 저에게도 무척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다만 한 장의 엽서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한 장의 엽서를 앞에 놓고 허용된 여백에 비해서 너무나 많은 생각에 잠시 아픈 마음이 됩니다.

형님에 관한 기억 중에서 우선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를테면 저와 형님과의 관계도, 다른 대부분의 형제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대화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비록 애정과 이해의 기초 위에서 비로소 가능한 하나의 미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창의와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별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대화는 인간관계의 정체를 가져오며 인간관계의 정체는 관계 그 자체의 퇴화를 가져오며 필경은 양 당사자에게 오히려 부담과 질곡만을 안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공장 출역
동생에게

처연한 밤빗소리 속에서 잠자다가, 가끔 청초한 7월의 하늘이 말끔히 개인 새벽에 깨어날 때, 나는 문득 7월이면 청포도가 익는다던 '육사'의 고향을 그리워해본다. 그러나 그리움이란 것도 퇴색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에 이미 더 높은 돌담을 쌓았기 때문인지 그저 그럴 뿐 오히려 물밑같이 조용해지기만 한다.

나는 내가 너의 일에 대해서 걱정한다든가 또는 아버님, 어머님 , 형님, 형수님 등 집안 식구들의 일을 걱정한다는 것이 격에 맞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생활을 보다 알찬 것으로 이끌어감으로써 어머님, 아버님의 나에 대한 걱정을 먼저 내 쪽에서 덜어드리고자 할 따름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