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목공샘

나는 걷고 싶다
계수님께

작년 여름 비로 다 내렸기 때문인지 눈이 인색한 겨울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눈 뒤끝의 매서운 추위는 죄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데도 눈 한번 찐하게 안 오나, 젊은 친구들 기다려쌓더니 얼마 전 사흘 내리 눈 내리는 날 기어이 운동장 구석에 눈사람 하나 세웠습니다.
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잘게 나눈 작은 싸움
계수님께

그 많은 싸움들을 보고 느낀 것입니다만, 싸움은 큰 싸움이 되기 전에 잘게 나누어서 미리미리 작은 싸움을 싸우는 것이 파국을 면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싸움은 잘만 관리하면 대화라는 틀 속에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책은 못되고 중책에 속합니다. 상책을 역시 싸움에 잘 지는 것입니다. 강물이 낮은 데로 흘러 결국 바다에 이르는 원리입니다. 쉽게 지면서도 어느덧 이겨버리는 이른바 패배의 변증법을 터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진다는 것이 여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기기보다 어렵습니다. 마음이 유해야 하고 도리에 순해야 합니다. 더구나 지면서도 이길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경우에 어긋나지 않고 떳떳해야 합니다. 경우에 어긋남이 없고 떳떳하기만 하면 조급하게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도 없고, 옆에서 보는 사람은 물론 이긴 듯 의기양양하던 당자까지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완벽한 승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것도 싸우지 않는 것만은 못합니다.
싸움은 첫째 싸우지 않는 것이 상지상책입니다. 그 다음이 잘 지는 것, 그 다음이 작은 싸움, 그리고 이기든 지든  큰 싸움은 하책에 속합니다.

비록 그릇은 깨뜨렸을지라도
부모님께

성공은 그릇이 넘는 것이고, 실패는 그릇을 쏟는 것이라면, 성공이 넘는 물을 즐기는 도취인 데 반하여 실패는 빈 그릇 그 자체에 대한 냉정한 성찰입니다. 저는 비록 그릇을 깨뜨린 축에 듭니다만, 성공에 의해서는 대개 그 지위가 커지고, 실패에 의해서는 자주 그 사람이 커진다는 역설을 믿고 싶습니다.

남북 동서 문 닫고 살아가는 사람들끼리의 왜소한 내왕에 비하면 자연의 내왕은 실로 웅장합니다. 근 열흘 만에 황사 사라지고 나자 복숭아꽃 환히 만발하였습니다. 그 먼지 속에서도 햇빛을 주워담고 물을 자아올려 봉오리 키워왔었던지 복숭아꽃 흡사 아우성처럼 언덕을 흔들고 있습니다. 우이동의 새봄과 함께 아버님, 어머님의 평안하심을 빕니다.
1988. 5. 1.

가석방이 얼마 남지 않은 88년 봄에 쓰신 엽서다. 그 해 대학에 입학한 나는 1988년이라면 왠지 눈에 밟힌다. 본문 내용의 남북 사람들끼리의 왜소한 내왕을, 가슴 뛰는 내왕에 대한 기대로 바꾸는 데 30년이 걸렸다. 바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김정은 남북 정상회담의 모습이 그것이다. 어쩌면 신영복 선생님의 옥중에서 정제하고 석방 이후 발전시킨 사상에 감화된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회담 성공은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우성처럼 언덕을 흔들고 있는 복숭아꽃과 같은 한반도의 봄이 오기를...아 선생님...

새끼가 무엇인지, 어미가 무엇인지(전문)
아버님께

참새집에서 참새새끼를 내렸습니다.
날새들 하늘에 두고 보자면 한사코 말렸는데도 철장 타고 그 높은 데까지 올라가 기어이 꺼내왔습니다. 길들여서 데리고 논다는 것입니다. 아직 날지도 못하는 부리가 노란 새끼였습니다. 손아귀 손에 놀란 가슴 할딱이고 있는데 사색이 된 어미참새가 가로 세로 어지럽게 날며 머리 위를 떠나지 못합니다.
"저것 봐라, 에미한테 날려보내줘라."
"날도 못하는디요?"
"그러믄 새집에 도로 올려줘라."
"3사 늠들이 꺼내갈 껀디요? 2사 꺼는 위생늠들이 꺼내서 구워 먹어뿌렀당게요."
"...."
손을 열어 땅에다 놓았더니 어미새가 번개같이 내려와 서로 몸 비비며 어쩔 줄 모릅니다. 함께 날아가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 높은 새집까지 안고 날아오를 수도 없고, 급한대로 구석으로 구석으로 데리고 가 숨박는데,
"저러다가 쥐구멍에 들어갔뿌리믄 쥐밥 된당께."
그것도 끔찍한 일입니다. 어쩔 수 없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방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마침 빌어두었던 쥐덫에 넣어 우선 창문턱에 얹어놓았습니다.
어느새 알아냈는지 어미새 두 마리가 득달같이 쫓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방안의 사람 짐승을 경계하는 듯하더니 금세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새끼한테 전념해버립니다. 쉴새없이 번갈아 먹이를 물어 나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다행한 일입니다.
"거 참 잘됐다. 우리가 아무리 잘 먹여야 에미만 하겠어? 에미가 키우게 해서 노랑딱지 떨어지면 훨훨 날려보내주자."
이렇게 해서 새끼참새는 날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 쥐덫 속에서 계속 어미새의 부양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먹이를 물어나르던 어미새는 쥐덫에 갇혔다가 놓여나는 혼찌검을 당하고도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새끼가 무엇인지, 어미가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참새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물론 어머님을 생각했습니다. 정릉 골짜기에서 식음을 전폐하시고 공들이시던 어머님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20년이 지나 이제는 빛바래도 좋은 기억이 찡하고 가슴에 사무쳐옵니다.
1988. 5. 30.

이 엽서를 끝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끝난다. 가석방되신 것이다. 20년 20일... 조선시대의 유배와도 같은, 아니 유배당한 선비보다 굴욕적이고 모욕적이고 사상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세월을 견뎌내신 선생님. 옥중에서 하루 하루, 나오셔서 하루 하루가 한반도 사상사에 하루만치의 발전이었을텐데, 너무 빨리 가신 것이 한이다.
33번의 필사 끝에 한 권의 책을 다시 보았다. 필사 전 한 번, 필사하면서 두 번, 오타 점검하면서 세 번, 그러고 보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세번 읽은 셈이다. 선생님을 세번 만나 본 셈이다. 더 자주 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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