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지속가능한 지구살이를 위해 재활용/친환경/ DIY 공부 중

신영복 30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11

눈 오는 날 형수님께 눈이 오는 날은 눈사람처럼 속까지 깨끗하게 되고 싶다던 '무구한 가슴'이 생각납니다. 모든 추함 까지도 은신시키는 기만의 백색에 둘리지 말자던 '냉철한 머리'가 아울러 생각납니다. 그러나 눈이 오는 날은 역시 후에 치러야 할 긴 한고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상당한 감정의 상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도 아버님께 '아름다움'이란 바깥 형식에 의해서라기보다 속 내용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규정되는 법임을 확인하는 심정입니다. 서도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자획의 모양보다는 자구에 담긴 뜻이 좋아야 함은 물론 특히 그 '사람'이 훌륭해야 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작품과 인간이 강하게 연대되고 있는 서도가, 단지 작품만으로 평가되는 인간 부재의 다른 분야보다 마음에 듭니다...

독서일기/필사 2018.03.3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9

동굴의 우상 아버님께 최후의 한 잎마저 떨어버린 겨울의 수목이 그 근간만으로 뚜렷이 바람 속에 서고, 모든 형태의 소유와 의상을 벗어버린 징역살이는 마치 물신성이 척결된 논리처럼 우리의 사고를 간단명료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겨울에는 자칫하면 주변에 대한 관심을 거두어 제 한 몸의 문제에 문 닫고 들어앉아 칩거해버릴 위험도 없지 않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소유욕이며 추락입니다. 그러므로 겨울이 돌아오면 스스로 문을 열고 북풍 속에 섬으로써만이 '동굴의 우상'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손님 아버님께 모든아이들에게 있어서 손님은, 어른들의 자상하지 않은 대꾸로 인하여 더욱 궁금해진 그 미지의 손님은 어린이들이 최초로 갖게 되는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이며, 어린아이들의 소왕국을 온통 휘저어놓는 '걸리버'의 ..

독서일기/필사 2018.03.2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8

거두망창월 아버님께 가을이라 옥창에 걸리는 달도 밤마다 둥글게 자랍니다. 가을은 '글 읽던 밤에 달이 떠 있는 우물물을 깨뜨리고 정갈하고 시원한 냉수를 뜨며' 잠시 시름을 쉬고 싶은 계절입니다. 옥창 속의 역마 계수님께 가게에 내놓은 사과알의 색깔과 굵기로 가을의 심도를 측정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풀빛의 어린 사과가 가게의 소반 위에서 가을과 함께 커가면 사과나무가 없는 출근길에 평소 걸음이 바쁘던 도회인들도 그나마 사과 한 알만큼의 가을을 얻게 됩니다. 역마살은 떠돌이 광대넋이 들린 거라고도 하고 길신이 씌운 거라고도 하지만, 아직도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꿈 찾아나서는 방랑이란 풀이를 나는 좋아합니다. 하늘 높이 바람 찬 연을 띄워놓으면 얼레가 쉴 수 없는 법. 안거란 기실 꿈의 상실이기 쉬우며 도..

독서일기/필사 2018.03.28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7

꽃과 나비 아버님, 어머님께 "꽃과 나비는 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저렇게 아름답게 자라지 않는냐." 어린 아들에게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졸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자애로 담뿍 적신 저는, 꽃보다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버림과 키움 아버님께 10년, 저는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은 서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두 개의 종소리(전문) 아버님께 새벽마다 저는 두 개의 종소리를 듣습니다. 새벽 4시쯤이면 어느 절에선가 범종소리가 울려오고 다시 한동안이 지나면 교회당의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 두 종소리는 서로 커다란..

독서일기/필사 2018.03.27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6

이웃의 체온 계수님께 수인들은 늘 벽을 만납니다. 통근길의 시민이 'stop'을 만나듯, 사슴이 엽사를 만나듯, 수인들은 징역의 도처에서 늘 벽을 만나고 있습니다. 가련한 자유의 시간인 꿈속에서마저 벽을 만나고 마는 것입니다. 무수한 벽과 벽 사이, 운신도 어려운 각진 공간에서 우리는 부단히 사고의 벽을 헐고자 합니다. 생각의 지붕을 벗고자 합니다. 온기 한 점 없는 냉방에서 우리를 덮어준 것은 동료들의 체온이었습니다. 추운 사람들끼리 서로의 체온을 모으는 동안 우리는 냉방이 가르치는 '벗'의 의미를, 겨울이 가르치는 '이웃의 체온'을 조금씩 조금씩 이해해가는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부모님께 접견 때마다 애써 아픈 마음을 누르시고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는 아버님, 어머님의 그 각별하신 배려 앞에서 저는..

독서일기/필사 2018.03.26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5

생각을 높이고자 아버님께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하여야 사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여자 동생에게 '미' 자는 '양' '대'의 회의로서 양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큼직한 양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그 고기를 먹고 그 털을 입는 양은 당시의 물질적 생활의 기본이었으며, 양이 커서 생활이 풍족해질 때의 그 푼푼한 마음이 곧 미였고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므로 너는 먼저 그녀의 생활목표의 소재를 확인하고 그 생활의 자세를 관찰하여 나아가 ..

독서일기/필사 2018.03.25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4

객관적 달성보다 주관적 지향을 동생에게 독방은 강한 개인이 창조되는 영토이다. 연말이, 새해가 다가왔다. 유정한 시간의 대하위에 팻말을 박아 연월을 정분하는 것은 아마 그 표적 앞에서 스스로의 옷깃을 여미어 바로 하자는 하나의 작은 '약속'인지도 모른다. 그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신영복선생님의 대전교도소 복역기간 중의 글을 엮은 것이다. 1971년부터 1986년. 내가 3살때부터 고1까지의 기간이다.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무려 16년을 대전교도소에 갇혀 계신 것이다.(물론 전체 수형생활은 20년 20일) 정치, 사회, 역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무럭무럭 자란 그 시간이 웬지 죄스럽다. 무엇을 위해 그..

독서일기/필사 2018.03.2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3

니토 위에 쓰는 글 지금부터 걸어서 건너야 할 형극의 벌판 저쪽에는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등댓불처럼 명멸한다. 그렇다.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 고달픈 다리를 끌고 석산빙하라도 건너서 '눈물겨운 재회'로 향하는 이 출발점에서 강한 첫발을 딛어야 한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커다란 기쁨이 작은 슬픔으로 말미암아 그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일은 아무래도 드물 것이라 생각된다. 슬픔보다는 기쁨이 그..

독서일기/필사 2018.03.2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2

청구회 추억 이 부분은 단행복으로도 출간된 [청구회 추억]-신영복 글/조병은 영역/김세현 그림 -으로 필사를 대신한다. 단행본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란... 대학교 때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없었던 내용임을 신영복 선생님의 '청구회 추억'의 추억이란 단행본 후기글에서 확인한다. 단편영화와도 같은 가슴 저린 동화같은 이야기, 그러나 사형수가 교도소에 엎드려 온 몸으로 써내려간 마음 절절한 이야기. 어두웠던 현대사가 만들어 낸 참으로 역설적인 문학적 성취와 개인의 정신사적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본문 내용은 필사하지 않는다.) '청구회 추억'의 추억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스치는 느낌은 한마디로 '공허'였다. 나의 존재 자체가 공동화되는 상실감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너무 짧게 끝..

독서일기/필사 2018.03.2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1

사랑은 경작되는 것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

독서일기/필사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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