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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필사

[떠남과 만남-구본형] 서문(필사)

잡테리어 목공샘 2018. 3. 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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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리움이 된 [구본형 선생님]

인상깊게 읽었던 책-떠남과 만남을 아끼는 후배를 주고 개정판 [떠남과 만남]을 또 구매했었다.

그 책을 이제야 다시 읽는다. 서문부터 새롭다. 그가 그리운 것이다.


필사하면서 읽어볼란다.


떠남과 만남

글.구본형

 

초판 서문-아주 천천히, 달팽이처럼, 온몸으로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움직임의 궤적이 남는다. 온몸으로 걸어가기 때문이다.

 

여행은 자유이다. 그리고 일상은 우리가 매여 있는 질서이다. 질서에 지치면 자유를 찾아 떠나고 자유에 지치면 다시 질서로 되돌아온다.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에 매여 있는 우리에게 여행은 늘 매력적인 것이며,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비장하지 않다.

 

여행처럼 설레는 것은 없다. 지도처럼 매혹적인 것 또한 없다.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며 낮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이다.

여행은 다른 사람이 덮던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쓰던 밥그릇과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다녀간 낡은 여관방 벽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낡은 벽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른 사람을 자신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행은 그러나 도피가 아니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버린 후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없다. 오직 버리기 위해 떠난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더 담아 올 수 있겠는가?

 

개정판 서문-날마다 두려움 속을 걸었던 그때 그곳들 중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이 서구적 배움의 방법이라면,

'느끼는 것만큼 알게 되는' 접근법이 동양의 그것이다.

 

'낮술''건달'은 불량하지만 내게는 자유의 언어들이었다.

 

그때 나는 외쳤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올 때는 새로운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 새로운 세상의 두려움을 미리 과장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잠재력과 가능성을 읽어야 한다. 좀 배고프면 어떠냐. 평생에 한 번 찾은 이 일의 불알을 꽉 쥐고 놓지 않은 것이다. 주어진 천복이니 이 길이 내 길이다. 엎어지고 뒹굴어도 이 길 위에서 죽으리라. 때마다 주어지는 밥이 사슬이지 않더냐. 굶주림을 두려워하면 들판의 이리가 되지 못한다. 이런 마음이 나를 지배할 때까지 나는 매일 걸었다.

 

결국 밥과 존재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사이에서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삶이란 흔들리는 것이고 균형을 잃었다가 이내 다시 그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되돌아오는 불안정한 체계인 것이다. 오직 죽은 것만이 변하지 않는다. 변화는 삶의 원칙이다.

 

되돌아보니 이 책 속의 그 장소들이 목줄이 풀린 내가 이리저리 떠돌던 바로 그곳들이었다. 마흔여섯 살에 매일 아침 짐을 꾸려 여관 문을 나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날마다 두려움 속을 걸었던 그곳들이었다.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도록 미리 두려움 속을 걸어두게 한 그 장소들이었다. 그렇게 매일 걷지 않았더라면 다리가 꺾여 이미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그 공간 속에서 비범하게 살았던 그 인물들의 외로운 숨결을 느끼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처럼 살지 못했을 것이다. 영광 있으라, 외로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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