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지속가능한 지구살이를 위해 재활용/친환경/ DIY 공부 중

독서일기/필사

[떠남과 만남-구본형] 2장-3,4,5

잡테리어 목공샘 2018. 3. 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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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햇빛과 동백 그리고 옛사람 그리운 백련사

남쪽의 토종 동백은 12월부터 하나씩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6월까지 피어 있다고 한다. 봄철에 남쪽의 동백을 보고 늘 놀라는 점은 꽃을 피우는 개수가 많지도 적지도 않다는 점이다.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능란한 전문가가 장식해놓은 것처럼 아주 적당한 만큼만 피어 있다. 그들은 스스로 조신하게 자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동백꽃은 꽃잎이 완전히 벌어지지 않는다. 금빛 수술들이 하나의 기둥을 이루듯 화심에 박혀 있지만 꽃잎이 뒤로 젖혀질 만큼 활짝 벌어지지 않는다. 반쯤 벌어져 있는 상태에서 장렬하게 목이 꺾여 꽃봉오리 전체가 낙화한다. 비장하다.

만덕산 아래 자리한 백련사로 오르는 길에는 남도의 봄이 완연하다. 강진다운 햇빛이 들길에 쏟아져 내리고, 들과 언덕은 벌써 놀라운 활력으로 가득 차 있다. 봄날은 힘을 주체하기 어렵다. 나른한 가운데 구석구석 온몸이 살아나는 듯하다.

다산초당
-천일각에 가면 그가 뒷짐을 지고 구강포를 바라보고 서 있네

-다산초당의 정약용 초상

아무 생각없이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고 바람소리를 듣다가 어째서 느닷없이 서까래 수를 세기 시작했을까? 한가함이다. 정신을 놓아두고 마음을 놓아둔 것이 얼마 만인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틀들이 터지며 매미 허물 같은 육신을 이곳에 놓아두고 혼은 잠시 여유로운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초당의 마당에 서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걸어보았다. 총명하고 심지가 바른 선비 하나가 역시 이 시간에 이곳을 거닐고 있었을 것이다. 정밀하고 치밀한 사고들이 이러한 산책을 통해 정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책에 '심서'라고 제목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다산은 [목민심서]의 서문을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심서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백성을 다스릴 마음은 있지만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어둠이 묵직하게 깔려오는데, 그 무게가 그의 마음처럼 무겁다. 그러나 그가 정치판에서 멀리 물러나와 이곳에서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우리 역사는 위대한 학자를 한 사람 가지게 되었다.

칠량 봉황리
-가업을 이어가기는 어렵고, 세상은 아직 알아주지 않는다

하고 있는 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미래가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절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하나의 일을 아직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방황이다. 어떤 일에 깨달음을 얻어 밝아지면 자신이 곧 그 일의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일을 아주 잘하려면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과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천업이라 믿고 하나의 일에 평생을 매달려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제 생긴 대로 살겠다는 뱃심이 중요하다. 나약한 사람은 어떤 경지에도 이를 수 없다. 정진에는 용맥보다 나은 것이 없다. 백척간두에서 또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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