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샘의 잡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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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필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12

잡테리어 목공샘 2018. 4. 1.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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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 너머 하늘
형수님께

창살 때문에 더 먼 하늘에는 크고 흰 구름이 일요일의 구름답게 바쁠 것 하나 없이 쉬고 있습니다.

흙내(전문)
계수님께

15척 옥담으로 둘린 교도소의 땅은 흔히들 좌절과 고뇌로 얼룩져서 화분에 담긴 흙처럼 흙내가 없다고 합니다.
이번 여름 패연히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다가 문득 창문 가득히 물씬 풍기는 흙내에 깜짝 놀랐습니다. 2층에서 보는 빗줄기는 더욱 세차고 길어서 장대같이 땅에 박혀 있었고 창문 가득한 흙내는 그 장대 빗줄기를 타고 오르는-맑은 날 뭉게구름이 되려고 솟아오른 흙내였습니다. 지심의 깊음에 비하면 얼룩진 땅 한 켜야 종이 한 장 두께도 못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뱀을 죽이면 반드시 나무에 걸어두었습니다. 흙내를 맡으면 다시 살아나서 밤중에 이불 속으로 찾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흙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서울에 흙에 실망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밑에서도 서울의 흙은 필시 차가운 지하수를 가슴에 안고 생생히 살아서 숨쉬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귀뚜라미가 방에 들어왔습니다.

- 서울의 흙에 실망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인천의 흙을 애도하며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밑 썩은 흙을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 나였다. 내가 살던 신혼집 빌라 현관 앞과 주차장 바닥의 콘크리트, 골목길과 대로변의 아스팔트 어디를 가도 흙을 밟을 수 없었다. 2004년에 태어난 첫째가 걸음마를 시작해도 집앞에는 가지고 놀 흙이 없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져도 그 상처 속에는 흙이 아닌 콘크리트 독만 가득했다. 어쩌다가 공원에라도 가면 흙을 밟고, 잔디밭에서 뒹구는 얼굴이 너무 밝아 보였다. 조그만 나뭇가지라도 발견하면 흙바닥에 금을 그으며 뭐가 그리 신난 지 표정은 해맑아 보였다.

'그래, 시골로 가자. 귀농, 그 삶에 대해 알아보자.' 그러고나서 2005년 가을 춘천 사북면 지촌리의 어느 귀농선배집으로  귀농실습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아이의 놀이터만을 위해서 귀농을 결심한 것은 아니다. 더 깊숙한 자각(귀농실습지에 계신 한주희 목사님 표현을 빌리자면-생태적 회개)도 있었다. 그건 다음 기회에 정리 하기로 하고. 유아기 때 흙에서 마음껏 놀 기회를 주기 위해서, 또 경쟁과 스트레스가 뻔히 보이는 도시 교육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골과 귀농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위의 글-흙내에서 신영복선생님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밑에서도 서울의 흙은 필시 차가운 지하수를 가슴에 안고 생생히 살아서 숨쉬고 있음'을 확신하신다. 죽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흙을 떠나 온 내가 부끄럽다. 거대한 자연의 힘을, 그 경이로움을 너무 가벼이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 자연의 신성함을 무시한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단면을 들킨 것 같아 선생님 저서 앞에 너무 부끄럽다. 면구스럽다. 이 글이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면(대학 다닐 때 읽어봤음으로) 귀농하지 않았을까? 도시의 흙에 대해서도 경외심을 가지고 계신 선생님을 생각하며 귀농의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반추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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